여태껏 살면서 사소한 것 말고는 무언가를 잃어본 적이 없다. 되돌리고 싶어 집착하는 애끓는 심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구멍을 다른 이름으로 고통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제주 4.3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면 역시 고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문장들이 낸 길 사이를 최대한 빨리 지나쳐가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소년이 온다> 또한 두 번을 읽은 뒤 지인에게 빌려주고는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다 나의 나약함 탓이다.
원래 소설책을 읽다가 잘 우는 타입이기는 하지만 작가 한강의 글은 유난히 더 힘들게 읽히곤 한다. 한강 작가의 글은 등장인물을 (또한 독자를) 조용히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상황 묘사 또한 섬세하며 탁월하다. 징징거리긴 했어도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어찌어찌 완독 할 수 있었던 것은 읽는 것도 이렇게 힘든 소설을, 몇 년간 붙들고 작업했을 작가의 고통은 오죽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고립된 도시에서 벌어진 집단학살'이라는 참담한 사건이 극 중의 설정만은 아니라는 자각 때문이었다. 5.18 광주와 제주 4.3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며, 생존자와 증언자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묵묵히 그들을 도왔을 가족과 지인들, 유가족의 삶은 살아있는 현실인 것이다. 책장이야 덮으면 그만이지만 그들의 과거는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며 계속되는 실제이다. 고통이라는 단어를 제외한다면 그들의 삶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시작도 5.18부터다. 화자인 '나(경하)'는 작가다. 소설 속에서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출간한 이후 삶이 완전히 망가져 있으며 때때로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중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앵무새를 돌보기 위해 갑작스럽게 제주로 향하는 길에서 폭설 때문에 고립된다. 겨우겨우 인선의 집에 도착한 나는 운명적으로 제주 4.3의 증언과 마주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제주 4.3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언이 삭제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우선적으로 다루는 것은 트라우마와 고통에 대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겨진 자들에게 고통이 어떻게 전이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경하와 인선은 광주 5.18과 제주 4.3이라는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로 인해 삶이 굴절되어 있지만 이들이 직접 그 사건을 경험한 것은 아니다.
경하가 느끼는 고통은 심각하다. 바닷물이 밀려오는 산등성이에서 구하지 못한 유골들을 바라보며 무기력함을 느끼는 내용의 꿈을 반복해서 꾸고 있으며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다. 친구 인선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봉합수술 전문병원에서 복도에 걸려있는 치료 전후의 사진을 의식하는 경하의 태도는 부자연스럽다. 경하는 학살에 대한 책을 집필하면서 심리적 내상을 입은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5.18이 끔찍한 사건이었다고는 해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일상이 무너질 만큼 심리적인 내상을 입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인선의 어머니는 4.3의 생존자였다. 인선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실종자였던 오빠를 찾기 위해 평생을 조용히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인선은 그런 어머니를 오랜 시간 애증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가는 태도가 익숙했던 어머니를 혐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바라보았다. 인선은 절단 사고 후 봉합수술을 받은 뒤 손가락의 신경이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삼 분마다 한 번씩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도록 하고 있었다. 인선은 기묘하게 느껴질 정도로 손가락의 고통을 잘 참고 있었다. 이는 인선의 어머니가 살아왔던 태도와도 비슷한 것이었으며 사실은 경하의 기억 속 인선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이기도 했다.
자신의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인선에게 절실한 것은 집에 혼자 남아있는 앵무새를 살리는 것이다. 제때 먹이나 물을 먹지 못한다면 금세 죽어버린다는 연약한 새를 살리기 위해 경하는 제주로 향한다. 제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폭설이 내려 시내버스와 전기가 끊기고, 발이 푹푹 빠져 걷기조차 힘든 길을 경하는 홀로 걸어간다. 어둠이 내리자 앞을 보는 것도 힘들어진다. 오롯이 동물적인 감각에만 의지해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어딘지도 알 수 없을 눈밭을 굴러 얼굴이 터지고, 온몸이 얼어도 경하는 앵무새를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경하와 새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 평소 새나 동물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경하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생명 그 자체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한 줌의 생명. 인선의 집에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막막해질 때마다 경하는 새를 떠올린다. 작가는 경하가 혼자 걸어가는 그 길을 꽤 공들여 묘사한다. 켜켜이 이미지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경험하게 한다. 모두를 고립시키고 흔적을 지우는 눈폭풍과 확신이 없는 채로 혼자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독자로 하여금 고립된 자의 막막함과 절실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내가 소설을 읽으며 경험한 고통은 경하와 인선의 고통일지 모른다. <작별하지 않는다> 속에 담겨있는 역사적 사건은 제주 4.3이지만 이 소설의 이야기를 그 사건에만 가두어놓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모르겠다. 내가 느낀 고통은 국가가 자행한 집단학살이라는 참담한 사건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고통이기도 하며,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본 이의 고통이기도 했다. 고통은 전이된다. 개인적인 접점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을 느끼며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 소설 속에 쓰여있는 제주 4.3의 증언을 읽는 내내 욕지기가 올라왔다. 무자비한 폭력과 야만성을 떠올리며 이것이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은 열패감을 불러왔다. 그러나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 사실이 주는 안도감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