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과학을 사랑하는 법>과 <레슨 인 케미스트리>
곽재식 작가의 <우리가 과학을 사랑하는 법>은 역사의 선구자격인 여성과학자들의 경험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여성과학자들이 차별과 가난에 맞서 어떻게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 갔는지, 그들의 열정과 업적을 짧게 요약해 놓았다. 다수의 과학자들을 다루다 보니 책 중반이 넘어가자 집중도가 살짝 떨어지기도 했다. 주로 읽는 장르인 소설의 문법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책 속 과학자들의 삶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책장만 넘기는 일이 잦아졌다.
"아, 그래. 그들이 엄청 노력했구나. 엄청 훌륭했구나!"
이러한 초딩스러운 느낌만 남아 책을 다 읽은 뒤에도 한 장도 읽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한 느낌에 시달리게 되고 말았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과학을 사랑하는 법>을 읽은 직후 보니 가머스 작가의 데뷔작 <레슨 인 케미스트리>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1950년대 미국, 여성화학자인 엘리자베스 조트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엘리자베스는 여성으로서 온갖 차별과 폭력, 생활고 속에서도 강철 멘털로 화학자라는 정체성과 자신의 연구를 끝까지 지켜 나간다. 연구로 돈을 벌 수 없게 된 그는 우연히 TV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는데, 평소 생각해 왔던 대로 "요리는 화학이다"라고 외치며 우여곡절 끝에 화학자인 자신만의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완성해 간다.
생동감 넘치고 매력적인 앨리자베스 조트의 행보를 지켜보며 <우리가 과학을 사랑하는 법>의 감상이 완성되어 감을 느꼈다. 매 순간 쉽지 않았을 여성과학자들의 삶과 과학적 성취가 얼마나 큰 노력으로 이룬 것이었을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트는 "그럼 애들아 상을 차려라. 너희 어머니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며 요리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그 말은 소설 속에서 '자기만의 방'이 없었던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으며, 21세기 현재에도 소설 속에서 엘리자베스 조트와 조우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