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이해하고 싶다면 서머싯 몸의 소설을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작가 서머싯 몸의 삶 또한 굴곡 그 자체였기에 그토록 입체적인 인물들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일까. 특히 이번에 완독한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와 같은 등장인물은 어떤 논리나 도덕 따위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기묘하게 매력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독자는 더욱 그에게 집중하게 된다. 욕 나오는 첫인상이지만 한동안은 마음에서 그를 치워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의 이미지가 보여주듯 세속적인 세계를 떠나 자신만의 시공간에 머물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는 누구의 눈에 띄기를 바라지 않으며 억지웃음을 짓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스트릭랜드는 단지 밤하늘에 은은하게 떠있는 달처럼 어떤 의미도 쫓지 않고 살아간다. 그림은 자신의 정신과 연결되는 언어일 뿐 그는 완성된 작품에도 미련이 없다. 오로지 순간을 사는 들짐승 같은 사람, 인과에서 벗어난 기이한 사람, 그가 스트릭랜드이다.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에 비웃음을 담고 내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순간 나는 언뜻 본 것이 있었다. 육체와 결부된 존재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위대한 무엇인가를 향해 뜨겁게 타오르는, 고뇌하는 영혼이 그것이었다. 나는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추구하는 혼을 보았던 것이다.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내, 남루한 옷차림에 코는 커다랗고 눈은 번쩍이며 수염은 붉고 머리칼은 더부룩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건 겉껍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육체를 벗어난 하나의 혼과 대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228쪽.
소설의 끝 무렵, 타히티로 떠난 스트릭랜드는 나병에 걸린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자신이 살던 오두막집의 벽과 천장에 그림을 그린다. 완성된 그림은 유언에 따라 불타는데 참으로 스트릭랜드답다는 생각이 드는 결말이었다. 꿈을 좇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자신의 세계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내가 압도된 것은 스트릭랜드의 힘, 야성이었다. 불꽃처럼 모든 것을 다 태우고 사라진 거침없는 한 인간의 영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