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움의 미학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오늘의 책은 너무 무겁다. 넘치는 사유들 속에서 나는 그 책의 일부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책은 이렇게 무겁게 써놓고 그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벼움이라니. 작가의 태도가 너무나 역설적이지 않은가!
심지어 밀란 쿤데라 작가는 소설 안에 직접 등장하여 소설과 자신의 해설을 섞어놓은 새로운 형태의 글을 보여주고 있다. 실험적인 시도라기보다는 조금의 왜곡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결벽증이 느껴졌는데, 이 또한 너무나 무겁지 않나!
나는 이 책에 반한 것이 분명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이런 방식의 무거움에 반했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생각하는 제멋대로의 존재인 것 같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며 가장 먼저 나를 사로잡은 인물은 테레자였다. 그는 이 소설 안에서 가장 무거운 인물이기도 하다. 나는 테레자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절실함이 좋았다.
육체의 추함과 어머니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테제자의 상승욕구는 그가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드러나듯 빈약하여 애처롭기까지 했다. 상승욕구가 있으면서도 테레자는 너무나 낭만적이다.
테레자는 육체와 영혼이 일치한다고 생각했고, 자기 영혼의 존재만큼 육체를 위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하필이면 토마시와 같은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이 실책이라면 실책일까. 테레자는 소설의 마지막까지도 토마시의 애정을 의심하며 갈등한다. 그러나 테레자의 절실함은 키치가 주는 우스꽝스러운 면을 가려주었는데, 테레자만은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테레자의 남자인 토마시 역시 왔다 갔다 하긴 하지만, 애써서 가벼워지고자 할 뿐 무거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괴상할 정도로 강박적인 규칙 안에서 여자들을 만났는데 그것은 그가 감정이 주는 무게감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는 관계나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토마시는 테레자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생이 끝날 때까지 함께한다. 토마시가 사비나가 아닌 테레자를 선택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들은 '프라하의 봄'이 주는 트라우마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다름 아닌 그 사건이다.
등장인물들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배신과 엮여있다. 삶은 그들의 의지를 배신하고, 그들 또한 삶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지 않는다. 인간의 삶이 '무용한 밑그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인간의 피가 지나치게 뜨겁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인간은 삶의 본질을 배신할 것이나 곧 자신의 의지를 배신당할 것이다. 소설의 대칭적인 구조에서도 드러나지만 무거움이 없다면 가벼움도 없다. 무거움은 가벼움을 증명한다. 테레자와 토마시가 없다면 사비나와 프란츠도 존재할 수 없다.
결국 인간의 삶은 여러 겹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삶은 무거움과 가벼움을 동시에 안고 있다. 굳이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무거움을 선택하고 싶다. 삶의 본질이 가벼움뿐이면 그 끝의 허무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이러한 선택 역시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인지 모른다. 무거움이든 가벼움이든 대세에는 지장이 없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야만 한다'라고 외쳐보아도 본질이 가벼움뿐이라면 그저 흘러가버릴 외침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