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매일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Feb 24. 2017

복권 대신 꽃을 사보세요

혜민스님


복권 대신 꽃을 사보세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꽃 두세 송이라도 사서 모처럼 식탁 위에 놓아보면,
당첨 확률 백 퍼센트인
며칠 간의 잔잔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서촌에는 미니 꽃다발을 파는 꽃집이 있다. 최근에 가격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예쁜 꽃을 저렴한 가격에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곳이다. 그곳에서 두 번 꽃을 샀다. 한 번은 나를 위해서, 또 한 번은 친구를 위해서. 처음 산 꽃다발은 내가 갖기 위한 것이었는데, 주문하면서도 조금 쑥스러웠다. 하지만 작은 다발을 그러쥐고 나오는 순간부터 입꼬리가 올라갔다. 괜히 손을 쭉 뻗어 사진도 찍어보고, 줄기가 꺾어질까 지하철에서도 꽃부터 보호했다. 전시회를 하는 친구에게 건네줄 때는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돈을 내고 꽃을 ‘산’ 것뿐인데, 마치 오래 키워온 꽃을 꺾어 정성스레 포장해준 기분이었다.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친구의 얼굴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어둑어둑한 8시경의 2층 카페에서 친구들과 날로 치솟고 있는 미국의 복권 당첨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어릴 적 장난으로 내뱉던 1조라는 금액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한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사람도 있을뿐더러,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과장된 광고까지 성행한다고. 1조라는 단위가 실감도 안 나 우리는 100억을 몇 개나 붙여야 하냐며 어린아이들처럼 계산하려 들었다.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이리라 생각하고 나니 불현듯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즉석복권이든 로또든 나는 항상 운이 없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유독 복권 당첨에는 운이 없었다. 그래도 간혹 주변에서 적은 액수라도 당첨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 번 사볼까,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솟는다. 돈이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확신이 사라지고 있다. 정말로 적은 돈으로도 내가 만족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무언가를 ‘사는’ 행위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그것도 아주 확실한 ‘행복’이 보장되어 있다면 그 누가 마다하겠는가. 복권 역시 기대를 품게 한다. 많은 돈을 받아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 하지만 기대가 현실이 되는 일은 사실 많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 당첨 확률 백 퍼센트인 꽃을 사리라 마음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차피 늦었으니까  느리게 살기로 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