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빨도 아프고 너무 피곤해]
[언니 뭐 피료한 것 없어?]
카톡 온 메시지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아. 또 이렇게 쓰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인데 참을 수 없다. 메시지에
담긴 배려와 살뜰한 애정은 이미 젖은 옷에 물을 뿌리는 것과 같다. 티가 나지 않는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바위에 음각을 새기듯이 몇 번을 반복해야 알 수 있을까. 짜증을 잔뜩 참으며 입술을 꽉 깨물고 엄지손가락을 빠르게 놀렸다.
[입빨이 아니라 이빨]
[피료가 아니라 필요]
다른 사람이면 넘기고 무시할 일이, 내 일이기에 잔뜩 예민해진다. 말에서 티가 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허들을 잔뜩 높이고 있는지 모른다.
“논리적이다, “현학적이다”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어려워하고 정치, 경제, 사회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그렇다고 일상 생활을 못하는 건 아니다. 청소나 빨래, 설거지는 기똥차게 잘한다.
네 개의 다리가 있는 의자.
그 중 하나의 길이가 짧다.
3년 전, 지영이와 처음 뇌파 검사를 하러 간 날. 활성도를 나타내는 뇌 그림의 절반이 텅 비어있다.
설명을 들은 나는 언니에게 바로 전했다.
[정보처리 능력 느림, 인지 능력 매우 낮음 나옴]
판사가 법봉을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뇌의 문제는 하나의 차가운 바늘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진료실을 나왔지만 무자비한 데이터는 내 마음을 후벼팠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지영의 모습을 보면 낯간지럽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과하게 친절한 어조와 톤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애초에 혼자 이해하라고 등 떠민 건 나 자신이면서.
‘이해 못 했으면서 또 저러네.’
냉소 어린 시선을 거두고 애써 미소 지었다.
“이해했어?”
우울증 약을 타고 심리상담을 받던 날, 지난 일화를 꺼냈다.
“왜 그렇게 인위적인지 모르겠어요.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잖아요. 너무 오버하는 느낌이랄까”
경계선지능인 사촌동생이 있다고 하면, 그 개념을 묻는 상담사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받는 상담 선생님은
경계선지능인에 대해서도 잘 알고, 돌보는 입장으로서의 나의 노고도 항상 치하해주신다.
“그게 그 친구의 생존방식이에요. 그렇게 살아남았고 버텨왔어요. 존중해줘야 해요.”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생존방식’이란 단어가 하루종일 둥둥 떠다녔다. 내 동생에겐 사회는, 삶은 어떤 곳일까.
서브웨이에 가게 되거나, 키오스크 앞에 혼자 서 있는 지영의 모습을 상상하면 되레 겁이 난다. 8년을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버틴 동생의 삶은 쉽게 그려낼 수 없다. 그저 그 시기가 암흑기고 터널이었다는 것. 나오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지영이의 ‘사람구실’을 운운하며 어떻게든 다니게 달래느라 바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지영이도 한계에 다다랐다. 언니와 나는 이미 우울과 암울함에 익숙해진 동생을 건져내려고 애썼다.
“관둬. 관두라니까?”
“관두면 다 해결될거야.”
어르고 달래고 화내고 강요했다. 늘 가던 길이 아닌 낯선 길을 가라는 언니들의 외침에 지영이는 마지못해 편의점을 정리했다.
그 당시 나는 새벽 공유오피스 청소와 카페 아르바이트로 투잡을 뛰고 있었다. 우울증으로 회사를 관뒀지만 생계는 늘 내게 돈을 재촉했다.
내가 하기엔 버겁고, 남을 주기엔 아까운 일. 새벽 지하철 첫차를 타고 간다는 것만 빼면 스트레스가 적은 단순 노동. 혼자 일하고 청소 인증샷을 포함한 모든 것이 비대면인 일. 성실함이 무기인 지영이가 단박에 떠올랐다.
“그래, 우리 지영이 청소 하나는 잘 해.”
전화면접을 봤던 담당자에게, 청소 일을 동생에게 넘기고 싶다고 하자 단번에 오케이를 받았다. 얼굴도 모르는 담당자는 지영이를 채용했다.
그 다음주 월요일부터 지영이와 새벽 첫차를 탔다. 출퇴근 인증, 청소하는 법, 인증샷 찍어 보내는 방법을 수차례 설명했다.
[목,금 이틀 인수 인계 완료했습니다]
비공식 인수인계 기간이 지나고 나서,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받은 것처럼 이틀에 걸쳐 빠짐없이 인수인계했다고 거짓말을 쳤다.
그 다음주부터 지영이는 혼자 출근하게 되었다. 지영이가 부닥칠, 예상치 못한 일들에 긴장이 되어 나도 새벽에 깨서 지영이의 연락을 기다렸다.
[퇴근함? 괜찮았어? 어려운 건? 막히는 건?]
퇴근 시간이 되면 하교를 챙기는 학부모처럼 연락을 넣었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을 더 보내고 나서야 나는 아침 잠을 좀 더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꽤 오랜 기간 지영이는 청소 업무를 잘해냈다. 그러다 청소 관리자가 바뀌면서 모든 것이 흔들렸다. 지영이가 지적을 받아 시무룩한 얼굴로 집온 날이 누적되었다. 얼굴이 씨뻘개진 채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늘어날 수록 직감적으로 알았다. 청소 일이 편의점처럼 되어간다는 것을.
‘나서면 안된다. 일단 혼자하게 지켜본다.’는 규칙을 깼다. 이전 관리자에게 전화해 상황을 파악했다. 지영에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신입 관리자의 과한 열정이 지영에겐 화살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안도감과 작은 기쁨을 품에 안고 전화를 끊었다. 방구석에서 기죽어 있는 동생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금방 자신감을 되찾고 청소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지영에게 세상 사람들은 거북이처럼 보일 것이다.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숨쉬는 존재들.
자유롭게 넘나들며 능수능란하다.
그 사이에 있는 작은 물고기.
육지에 완전히 나오지 못하고
바닷가를 맴도는 내 동생.
그 여리고 작은 마음에
‘왜 나는 다를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면
난 작은 어항을 자처한다.
나라는 부실하고 금이 간 어항이라도 괜찮다면,
같이 육지 구경을 하러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