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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Nov 17. 2019

노비가 될 것인가 도비가 될 것인가

나의 퇴사 희망 디데이는 내년 초. 나의 전세대출 만기는 약 1년 6개월 뒤. 조각보 같은, 경력이라 부르기 애매한 이력.  다니는 회사는 퇴사하는 사람을 잡고 또 잡는 질척되는 경향이 있다. 깔끔하게 이별하는 것에 서툰 상사를 보며 제삼자로는 씁쓸했다. 그것이 내 일이 되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 역시 웃으면서 웃으면서 나올 수는 없을 것 같다. 최대 붙잡은 사례는 3개월.  그렇다면 나는 언제 퇴사 이야기를 꺼내야 내가 원하는 최적에 시기에 나올 수 있는지 주초에는 열심히 짱구를 돌린다. 


최근 들어 요일별 컨디션이 극과 극을 달린다. 이러다간 정말 내가 우리 부서의 또라이가 될 것 같아 두렵다가도 아예 그냥 또라이가 돼서 아무도 날 건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수요일이 기점이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양배추환 20알을 입안에 털어 넣은 기분이다. 구체적으론 월요일은 30알, 화요일은 20알. 양배추환을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작은 알갱이가 뿜어내는 향기 한꺼번에 많이 먹었을 때 자연스레 올라오는 역함. 참고로 양배추환과 양배추즙은 레벨 차이에서 말할 수 없을 정도며 함유량 100% 아닌 건 여기에 명함도 못 내민다. 아무튼 그러한 월요일 화요일이 지나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콩가루를 먹는 기분인 수요일이 온다. 끔찍하다. 


이딴 회사 당장 때려치운다 중얼거리면서 출근 준비를 한다. 상태가 안 좋으면 엄한 베개에게 원펀치를 날린다. 수요일 저녁때부턴 조금 설레기 시작한다. 목요일이다. 이제 곧 주말이 보인다. 하지만 목요일 컨디션이 안 좋으면 또다시 콩가루 모드가 된다. 왜 금요일이 아닌 거지? 하면서. 그렇게 목요일을 보내고 나면 금요일이 온다. 


금요일엔 굉장히 하이텐션이라서 월요일과 비교하면 조울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모든 것이 행복하다. 기분 나쁜 일도 이해할 수 있고 실수에도 관대하다. '어휴 저 인간 또 저러네' 이러며 넘어갈 수 있다. 약간 알코올에 취한 사람처럼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진 오롯이 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말 동안엔 그동안 내팽개친 일상을 조금씩 정돈해 나간다.  어중간한 자유는 일탈을 자제시키는 것 같다. 주말, 내가 주인인 시간을 보내면 그래도 현실을 버틸만하다. 일주일 내내 회사에 있었다면 누가 봐도 튕겨져 나갈 텐데. 아무튼 도비는 자유예요의 도비를 꿈꾸며 노비 생활을 하고 있다. 퇴사하는 누구나 봤을 그 유명한 사진말이다. 


새끼 코끼리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일화랑 비슷한 걸까 싶다. 주말에 청소를 하고 글을 쓰면 기분이 좋다. 살 것 같고 내면이 채워지는 충족감과 안정감이 든다. 충전 중인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느낌이랄까. 회사에 나가면 1% 남은 스마트폰을 쓰는 기분이다. 항상 쫓기고 안절부절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너무 바쁘면 화장실도 못 가고 점심도 못 먹고 양치도 포기한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어 눈물이 핑 돈다. 가족에게 말하면 너무나 걱정할 걸 알고, 회사 사람들에게 말하기엔 불행 올림픽의 개막식을 알리는 일이 될 것이다. 친구에게 말하기엔 업종이 달라서 감정의 위로를 받기엔 너무 많은 사전 준비가 진이 빠져버린다. 이제 나이가 몇 개인데 아직도 그걸 못 버티고 있냐라는 내면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다가 다시 금요일이 오면 또다시 행복감이 밀려온다. 이런 패턴은  완벽한 노비가 되려는 전조인지 도비가 되라는 신호인지 알 수가 없다.


도비가 되고 싶어 글을 쓰고 있는데 기회는 지금 당장 오지 않을 것 같다.  집안의 경제적인 가장 역할을 맡고 있어서 일단 퇴사를 외칠 수도 없다. 그래서 디데이를 정해놓고 이때까진 버티자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퇴사 후 계획은 카페나 베이커리 오픈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글 쓰는 것, 아니면 2~3주 정도 완전히 쉬고 일반 사무직으로 업종을 변경하여 재취업을 하는 것이다. 사실 디데이가 지나고도 이곳에서 뿌리박고 일하는 나 자신이 제일 두렵다. 디데이가 허공에의 외침이 되는 것, 여기에 그냥 안주해버리는 건 아닐까. 도비는 해리포터의 도움으로 자유가 된다. 이렇게 쌓인 글들이 나에게 해리포터가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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