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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Nov 17. 2019

이케아가 주는 어떤 포근함

오늘은 반드시 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간다. 

아예 멀리 있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어중간한 가능성은 사람에게 도전심을 준다. 고양시에 생긴 이케아는 뚜벅이는 잊을만하면 주기적으로 고민했다. 갈까 말까. 그러다 점심때 대화 주제가 없어서 이케아로 운을 띄웠다. 말의 힘은 언제나 강하다. 점심때 가볍게 말한 순간 투지가 솟구쳤다. 간다. 영업시간은 10시. 퇴근시간은 6시 30분. 8시에 도착해도 2시간은 구경할 수 있다. 수학은 퇴화된 머리가 역순으로 셈을 한다. 진짜 간다. 이케아.


6시 30분, 퇴근과 동시에 뚜벅이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홍대입구에서 좌석버스를 탔다. 시내버스, 최근엔 뚜벅이로 대중 교통과도 멀어지고 있는 요즘 초행길 좌석버스는 퀘스트 같았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켜서 내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좌석버스는 20분 뒤 온다. 10분을 기다리다가 뭔가 싸해서 폰을 다시 확인했다. 정 반대 방향의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급할 때 역주행하는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다시 버스정류장을 찾아가서 버스를 탔다. 난 초보니까 운전석 바로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비 오는 금요일 퇴근 시간은 운전하는 모두에게 짜증지수를 높였던 것일까. 버스기사님이 클락션을 너무 자주 울려서 신경 쓰인다. 막히는 건 감안했는데 클락션 소리에 멀미가 났다. 겨우 내려서 또다시 지도를 따라 걸어간다. 인적 드문 도로를 혼자 걸어가면서 차 안의 사람들에겐 내가 어떻게 보이려나 싶다. 10분을 걸었을까 이케아가 보인다. 파란색과 노란색. 뭔가 여기까지 혼자 왔다는 실감에 벅차오른다.


오늘 살 건 트롤리와 장스탠드. 본 퀘스트에 앞서서 체력을 다지기 위해 푸드코트로 향한다.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로 구성된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다. 활기찬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앞으로도 혼자 살 나도 질세라 더 경쾌하게 한 발을 내디뎌 본다. 혼자 돈가스와 애플 케이크를 먹는다. 표지 안내대로 쇼룸을 본다. 인테리어가 환상같이 현실적이다. 어딘가 있을 법한 그러나 내 집은 아닌. 황홀경에 빠진 듯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린다. 조명도 껐다 켜본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초행길은 역시나 그렇듯 같은 곳을 반복해서 돌았다. 마감 1시간을 알리는 안내 멘트에 정신이 번쩍, 물건을 사려고 했지만 전시품은 있지만 상품은 없다. 직원에게 처음 온 나의 상태를 솔직하게 알린 후 물건 사는 법을 배웠다. 셀프서브로 달려갔다. 창고가 주는 압도감에 내가 너무 작아 보이고 앞에 뛰어노는 아이는 더 작아 보인다. 들어보니 생각보다 무겁다. 마트처럼 셀프 포장대를 찾았는데 없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앞에 있는 대형 봉투를 샀다. 다행히 딱 맞아 어깨와 등에이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결과적으론 저녁 식사 비용이 택배비랑 맞먹어서 온라인 주문으로 했으면 시간을 아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생처음 가본 이케아에서, 그곳에 삼사오오 모여있는 그룹과 나 혼자 사이에서 앞으로 혼자 살 내가 취해야 할 삶의 노선이 보였다. 그리고 이케아에 가서 제대로 느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혼 주의자였고 비혼을 맘에 두고 있구나. 인테리어 조명과 소품을 보면서 '앞으로 혼자 살 텐데'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떠다녔다.


모든 상품이 '이걸 사면 당신은 더 행복해질 거예요.'라는 걸 어필한다. 하지만 금요일 이케아에선, 그 공간 전체가 '여기에 있으면 당신은 더 행복해질 거어요.'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곳에 있는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풍기는 행복감이 나한테까지 닿았던 건 아닐까. 아니면, 혼자로 미래를 구상하는 내게 인테리어로 삶의 시선을 넓히는 계기에서 오는 혼자만의 만족감일지도 모르지만. 침대 옆에 있는 트롤리와 장스탠드가 그때의 감정을 오랫동안 머금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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