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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Nov 12. 2019

주먹밥 예찬

내외부의 스트레스에 폭발한 위장은 한때의 장렬했던 소화 능력을 과거의 영달로 만들어버렸다. 식사 패턴은, 규칙적인 일상 패턴에 반기라도 드는 듯 자유자재로 널뛴다. 폭식이 우기라면 절식하는 기간은 건기라고 하면 좋을 듯싶다. 한때 '너는 소나기밥을 먹는구나'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먹을 땐 앞뒤 안 가리고 먹지만, 어느새 목구멍에 뭔가 큰 돌멩이가 식도를 꽉 채운 듯 삼키는 것도 힘들 때가 있는데 이때가 건기의 시작이다. 하지만 가뭄 속에서도 마른 새싹이 움트는 것처럼, 사회생활에 제 목소리 내지 못하는 나를 위로하듯 배에서 꼬르륵 소리만큼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어댄다. 


고등학교 때 중간고사 때 시험지 넘기는 소리만이 드문드문 들릴 무렵, 맨 뒤에 앉은 나의 꼬르륵 소리는 교탁 앞까지 들려 시험 감독관 선생님의 장난거리가 된 적이 있다. 대학교에 와서는 대형 강의에서 시끄럽게 우는 통에 알지도 못하는 앞사람이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본 적도 있다. 다독여도 꼬륵소리는 대중없었다. 참으로 주인의 수치심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안하무인의 위장이 되겠다.


지금은 반건기인데 하루에 한 끼 정도를 밥으로 채우고 그 외는 양배추나 사과즙으로 해결하고 있다. 고구마는 일전의 탄 고구마 사건 이후로 잠깐 자제하고 있다. 한상차림은 부담스럽고 안 먹자니 4시부터 꼬륵대는 통에 집중이 안된다. 이때 이성을 잃으면 탕비실 과자 2/3가 내 책상 위에 나뒹굴게 되는데 퇴근길에 후회만 가중시킨다. 일요일 점심때 아는 언니가 손에 쥐어준 멸치 주먹밥을 가방에 둔 채 잠들었다. 월요일 점심시간에 지갑을 뒤적거리다가 어제 그 주먹밥이 나왔다. 옳다구나 싶어서 다른 직원들이 점심 먹으러 나간, 조용한 사무실 뜨거운 차 한 잔을 옆에 두고 포장을 뜯었다.


삼각뿔 모양의 주먹밥은 김가루와 잔멸치, 밥알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한입 베어 무니 약간 덩어리지게 떨어져 나온 밥 뭉치가 입안에 들어왔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다. 동글동글 뭉친 밥알들을 느낄수록 포근하고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한입 더 먹고 차를 한 모금 마신다. 입안에 남아 있던 풍미가 짙어진다. 그다음 한 입, 그다음 한 입, 전체 다섯 입이 되지 않은 작은 주먹밥을 먹고 아까 보다 식었던 차를 마지막을 쭉 들이킨다. 짧지만 알찬 작은 점심이 해결된 느낌이 든다. 행복감이 든다.


다음 날 점심, 주변의 주먹밥 집을 찾았지만 식당이 사라지면 당연하게 카페가 자리 잡는 이 동네 특성상 주먹밥 집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한 곳에 전화를 건다. 주먹밥을 찾는 내게 중년의 남성이 활색 넘치게 답한다.

 “아이고! 주먹밥 찾으시는구나! 저희 주먹밥은 봉사자들이 만드는 건데 내일부터 판매될 거예요.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먹밥을 얻지 못한 나는 편의점 삼각김밥을 사러 나갔다. 또다. 적정 시간보다 전자레인지 조리를 과하게 했다. 김이 비닐처럼 흐물거린다. 어제와 똑같은 방식으로 차와 삼각김밥. 흐물거리는 김을 보며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도 잠시나마 물러진다.


그 다음날 점심,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 전화를  건 이상 일단 물건을 팔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돌았다. 안 팔아도 일단 가게를 가봐야 맘이 편할 것 같았다. 지도를 보고 주먹밥 파는 곳에 가는 길 도중에 작은 테이블 노점이 있다. 테이블 뒤로 두 명의 외국인이 서 있다. 테이블 위에는 주먹밥-오니기리 두 개가 예쁘게 포장되어 있다. 내가 다가가자 우리말을 할 줄 아는 듯한 일본인이 말을 건넨다.

 “매실 장아찌를 넣었어요. 저희가 만들었어요.”

 “네. 근데 카드도 될까요?”

 “네, 카드도 괜찮아요! 제가 매장 가서 결제하면 되어요.”

 “그럼 두 개 주세요.”

많아야 6개가 놓일 법한 작은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두 개의 주먹밥을 싹쓸이했다. 좋아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의무를 다하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양 주머니에 넣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또다시 차를 우리고 주먹밥을 먹는다. 매실 장아찌라. 처음이라 기대된다. 한 입. 두 입. 세 입째 먹는데 짜다. 생각보다 많이 짰다. 밥 뭉치를 느끼자 역시 주먹밥은 주먹밥이었다. 편의점 삼각김밥처럼 저온에서 보관되는 주먹밥은 데워먹는 게 좋은데 상온에 보관되어 있는 건 그냥 데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야 차를 마실 때 개운함과 따뜻함이 배가된다.


뭉친 밥은 갓 지은 밥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동글동글한 모양에서는 귀엽고, 뜨겁지 않아 허기질 때 빠르게 먹을 수도 있어서 좋다. 주먹밥엔 뭉친 밥의 매력에 깊이감이 더해진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게 되지만 그 안에는 김이나 김가루 종류에 따라서는 당근, 햄, 매실장아찌, 멸치 등등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쉽게 알아 채기 어려운 참깨와 참기름까지. 이런 수고로움을 안고 있지만 떠벌리지 않고 밥알들과 함께 꽁꽁 붙들어 하나의 모양을 만들어낸다. 겸손하다. 사람이 먹기 전까지 자기 모양을 고고히 유지한다. 강직하다. 가방이나 주머니에 쏙 넣어 가지고 다니기도 편리하다. 그야말로 다재다능의 대명사 주먹밥. 쓰다 보니 앞으론 주먹밥 같은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생각도 조금씩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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