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길을 걷다 보면 앞사람의 호흡이 나보다 빠르거나 비슷한 게 좋다. 천천히 걷는 스타일-노약자, 연소자 제외-이거나 친구와 대화 삼매경에 빠져 있거나 연인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은 커플이라면 쥐약이다.
이럴 때 빠져나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가로수 쪽으로 재빠르게 빠지는 것. 햇빛을 사랑한 나머지 완만한 곡선의 자태의 나무라면 차도까지 내려와서 일단 쑥하고 앞지르면 된다. 제일 난감할 때가 인도에 차가 바싹 붙어 차도로 내려가기도 여의치 않을 때이다. 그러면 앞사람의 뒤통수를 보거나 두 사람 사이의 허공을 쳐다보면서 나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어차피 소용없지만 말이다.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니까.
몇 년 전엔 내 성미가 너무 급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뭐가 그리 급해서 조바심을 내는 거지? 횡단보도 앞에 걸려있던, 조금 먼저 가려다 영원히 먼저 갈 수 있다는 뉘앙스의 현수막이 떠올랐다. 끽해야 5분 내외 차이인데 그게 뭐 다르겠어. 속에서는 천불이 나지만 그래도 슬금슬금 걸었다.
최근 들어 이 생각이 바뀌었다. 일단 내 조급한 성질머리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또 하나는 앞사람이 천천히 가고 있는데 굳이 맞출 필요는 없다고. 천천히 걷는 그 사람은 자기 속도로 걷는 있는데 내가 왜 굳이 이 사람의 속도에 맞춰야 하는 거지? 그리하여 난 쇼트트랙 경기에서 인코스 아웃코스 빠지는 것처럼 기를 써서 뚫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뒤에서 또 이야기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는데 앞에서 어물쩡거리면 그야말로 희망고문이다. 앞에서 알짱거리지 않아도 될동말동인데. 애초에 불가능인 거라면 중간에 마음을 접고 안녕을 외칠 텐데. 한 입 주겠다며 먹으려는 순간 숟가락을 뒤로 빼버리면 안달 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한 번 숟가락을 빼는 애들의 특징은 두세 번째에도 숟가락을 뺀다. 곱게 한입을 주지 않는다.
앞으로 치고 나가자.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갈 수 있는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자. 한계점을 알아야 스피드를 조절할 수 있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나의 속도를 속단하지 말고 남의 속도에 억지로 맞추지 말자. 느린 사람 맞추는 것도 힘들지만 빠른 사람 맞추는 것도 힘드니까. 뱁새는 괜히 뱁새가 아니다. 친구랑 연인이랑 함께 걷는 길은 행복하지만 혼자 걷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걸 기억하자.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집에 돌아오는 길 모두. ‘오늘도 즐거웠어, 바이 바이’하고 뒤돌면 그때부턴 혼자 걷기 시작한다. 차를 탄다고? 그럼 차에서 내려서 현관 앞까지의 그 짧은 거리를 생각해보자.
애초에 남의 속도 대신 내 속도나 정확히 재자.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남의 속도를 이해하게 된다. 각자의 속도가 사람 얼굴만큼이나 다르다는 걸. 앞으로 치고 나가자 그렇다고 정말 치진 말자. 싸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