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회 1 - 발표 준비를 하다가
"일본에서? 40분?"
처음 발표 시간을 들었을 때, 나는 곧바로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었어요. 보스턴에서 일본까지는 너무 멀고 발표 시간도 길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를 차분히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을 다녀오는 일정이 일상을 유지하는데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도 했어요. 최근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또 내 연구가 40분 동안 청중들을 흥미롭게 만들어 주기엔 깊이가 충분치 않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결국엔 간다고 결정하긴 했지만, 컨디션 난조가 계속되었기에 실제로 학회 전에 zoom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 문의할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간다고 말한 이상, 책임을 지고 싶었어요. 그때 왜 책임감이란 단어가 떠올랐는진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 단어를 떠올리자, 많은 어려움들이 눈에서 사라졌어요. 그냥 내가 처음 말한 약속을 지키고 싶어 졌습니다. 살다 보면 가끔씩 단어가 주는 힘을 경험합니다.
진행 중인 연구를 하느라 발표 준비는 이틀 전부터야 시작했어요. 학회에서 구두 발표를 하면 항상 잘 해냈다는 뿌듯함보단 후회가 훨씬 많이 남곤 합니다.
'이번엔 어떻게 준비해야 덜 후회할까? 어떻게 하면 최대한 나를 숨기고 연구 내용이 스스로 말하게끔 할 수 있을까?'
질문들에 답을 하며 슬라이드를 작성했어요. 연구 내용을 발표하는 것은 매일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는 행위와는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무엇보다 나와 연구 대상 사이에 새로운 사람, 즉 청중이 등장합니다. 나는 이들에게 최대한 사려 깊게 지금까지 나와 함께한 친구를 소개해 주려 합니다. 문제는 한 번씩 내 친구인 연구대상보다 나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마음이 들 때에요. 그런 발표는 항상 후회를 남습니다. 발표할 때도 항상 필요 이상의 긴장과 부자연스러움이 남아요.
발표를 준비하던 그날도 최대한 마음을 정제하려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문득 20대 때 연구실에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문장이 떠올랐어요.
'학자가 되고 싶다.'
이 문장은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연구자는 연구도 잘해야 하고, 발표도 이해하기 쉽게 잘해야 하고, 과제나 성과 보고를 위해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려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으론 연구자는 학자여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그 이상으로 내가 지향하는 내 업을 대하는 태도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나와 연구대상이 긴밀히 대화를 하고 그 대화를 소중히 기록하는 모습. 학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연구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 주었습니다. 과학을 업으로 삼는다고 해서 모두가 학자인 것은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학자는 직업이라기 보단 사람의 특성과 태도에 대한 설명에 가깝습니다. 내가 학자라는 것은 '관찰, 앎, 사유 자체가 연구라는 이 업이 내게 주는 가장 크고 충분한 가치다'라고 고백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감사하게도 자연은 이따금씩 모래알을 보는 학자에게 우주를 이야기해 주기도 하지만요.
나는 정말 학자로서 나의 연구대상을 대하고 있는지 잠시 생각하고선 다시 슬라이드를 만들었습니다. 내 친구를 소개하려 하는데, 내 친구에게 흥미를 느낄지 안 느낄지는 그다음의 문제겠죠. 지금껏 이 친구와 지내며 이따금씩 내게 보여준 가치들이 준 즐거움을 한번 더 생각하고 정돈된 마음으로 발표 준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어느 이상의 노력을 해, 내 연구대상을 더 흥미롭게 봐줄 순 있겠지만, 그것은 언젠가 한계가 있을 거예요. 그건 그럴 때가 되면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나는 이번 기회에 내 연구 대상을 좀 더 사랑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