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
오늘 오후, 교무실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신규 선생님이 책상 위에서 휴지에 감싼 무언가를 열심히 으깨고 있었다.
마치 옛날 약방 약사처럼 알약을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드는 중이었다.
“선생님, 뭐 하세요?”
“아, 우리 반 학생이 보건실에서 약을 받았는데 알약을 못 삼켜서요.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타 주려고요.”
잠깐, 뭐라고요?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메타버스를 누비고, 유튜브로 세계 문화를 섭렵하며,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시대다.
그런데 지름 5mm짜리 알약 하나를 못 삼킨다.
더 웃긴 건—이 아이는 매운 떡볶이, 불닭볶음면, 핵불닭까지 거뜬하다.
혀가 얼얼해도 “맛있다”를 외치며 계속 먹는다.
하지만 타이레놀 한 알은 30분째 입에 머금다가 결국 뱉어낸다.
솔직히 엄마 입장에서 내 아이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신규 선생님의 마음은 정말 고맙다.
하지만 한편으론 조금 민망하다.
‘중학생이 알약도 못 먹어서 선생님을 번거롭게 하다니…’
그리고 솔직히 화도 난다.
중학교 1학년이 고등학교 수학 1등급이라고 자랑하면서 약국에서 "해열제 주세요" 한마디 하기는 어렵다.
나는 학교에 있으면서 수많은 "똑똑한 바보"들을 만난다.
또 한 편으로는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그려져서 걱정도 된다.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워하는 학부모들이 대다수겠지만,
일부는 다음에 또 알약을 빻아주기를 기대할 것이고,
작년에는 해줬는데 왜 올해는 안 해주느냐?
왜 학교 보건실에는 알약만 갖춰두드냐...
뒤로 이어질 수많은 민원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어 유치원에서 원어민과 토론은 하지만, 한국어로 “배 아파요” 말하기는 어색하다.
코딩으로 게임은 만들지만, 학습지 한 장만 더 주실 수 있나요? 말은 못 한다.
글로벌 인재 교육은 받지만, 생활 자립 능력은 제로다.
그리고 결국, 신규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절구질을 한다.
사실 알약을 못 삼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아이가 ‘못 해요’라고 말할 때 어른들이 너무 쉽게 대신해 준다는 거다.
“힘들지? 그럼 선생님이 가루로 해줄게.”
“어려우면 엄마가 해줄게.”
“괜찮아, 안 해도 돼.”
그리고 몇 년 뒤 똑같이 외친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서, 군대에서 그리고 회사에서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의존적이야?”
한 대학교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수강 신청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라는 안내를 했다고 해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선생님들은 놀라지 않았다. 너무나 예상되던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년 중학교 입학 설명회에서 꼭 이렇게 말했으면 한다.
“겨울방학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12월: 알약 삼키기 훈련
1월: ‘못 해요’ 대신 ‘어떻게 해요?’ 묻기
2월: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기”
그렇게 해야 3월의 선생님들은 절구질 대신 수업에 집중할 수 있다.
신규 선생님의 마음은 백번 고맙다.
하지만 ‘못 한다’라고 할 때 한 번 더 시도하게 하는 것도 사랑이다.
알약 하나쯤, 대수롭지 않다.
그래서 더 연습해야 한다.
세상은 대수롭지 않은 일들로 가득하고,
그것들을 스스로 해낼 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1. 알약 삼키는 법 : 학교 보건실에는 주로 알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2. 연필 빌려달라고 부탁하기 : 수업 내내 책상만 두드리는 건 공부가 아닙니다.
3. 수업이 시작되면 하던 일, 친구와 하던 말 멈추고 집중하기 : 저기요. 저 앞에 있어요. 가끔 아니 자주 투명 인간이 되는 선생님
4. 이거 적어야 해요? 묻지 말고, 수업 중 필기하기 : 적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는 것도 공부입니다.
5. "엄마가요" 금지 : 엄마는 학교에 재학 중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