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순이다. 집순이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정도가 중간 이상은 되는 집순이다. 대학생 시절 방학이 되면 거뜬히 이주 정도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잘 지냈을 정도로, 나는 집을 사랑한다.
집에서 대체 뭘 그렇게 하냐고, 심심하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만의 '집순이 핫템'만 있으면 몇 날 며칠이고 아무 문제없다. 지금부터 그 핫템 세 가지, 흙침대-바디필로우-각도 조절 책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원래 바닥에서 잠을 자던 사람이다. 등이 배겨 불편하니 침대가 낫다는 사람도 있지만, 혹여 침대에서 잘 일이 생기면 그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흙침대'를 구입하시게 되었고, 진작 살 걸! 너무 좋다!는 말씀에 반신반의하며 한 번 누워봤다. 따뜻하게 불도 올려 봤다. 그랬더니 몇 시간이 순삭!(=순식간에 삭제) 정말 꿀잠을 잤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구입했다(?)
보일러를 켜면 방 전체에 훈기가 도는데, 이게 방 안 공기를 전체적으로 갑갑하게 만들었다. 흙침대만 온도를 높이니 이 문제가 해결되면서도 내 잠자리는 여전히 따뜻하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겨울철 난방비 걱정도 같이 줄어들었다. 또 흙침대라고 하니 괜히 몸에 더 좋은가 하는 기분 탓인지, 몸이 따뜻해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잠도 확실히 더 잘 잔다. 일어날 때도 바닥보다 힘이 덜 실려 무릎 건강에 좋은 것도 이득인 부분이다(내 나이에 벌써...?)
가만히 누워있는 걸 너무 좋아하다 보니 또 등장한 핫템이 있다. 바로 '바디필로우'다. 나의 숙면의 역사는 바디필로우가 있기 전과 후로 나뉠 만큼 이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여행을 가게 되면 바디필로우가 없으니 여분의 베개로 대신하는데 영 맛이 안 산다. 확실히 바디필로우여야 한다.
바디필로우는 계절마다 다르게 쓴다. 여름용은 겉이 까슬까슬해서 살이 닿기만 해도 몸의 온도가 저절로 내려가고, 겨울용은 톡톡한 두께의 면소재라 끌어안고 있으면 포근해서 참 좋다.
모양도 가지각색 여러 가지를 써봤다. 초승달처럼 굴곡진 형태나 귀여운 동물 캐릭터도 있지만 다리 사이에 끼웠을 때 가장 안정적이었던 것은 죽부인처럼 생긴 긴 원통형이다. 잘 때뿐만 아니라 벽에 붙여놓고 등을 기댈 때도 좋고 앉아있을 때에는 배 앞쪽에 놓고 팔을 얹어놓기도 딱이다. 또 천장을 보고 바로 누웠을 때 무릎 밑에 받쳐놓으면 허리가 한결 편안해진다.
각자 잠이 잘 오는 편안한 자세가 있을 텐데, 나는 모로 누워 바디필로우를 다리 사이에 끼우면 그렇게 잠이 잘 온다. 덕분에 요새 꿀잠을 잔다.
그럼 누워서 잠만 자느냐? 아니다. 진정한 집순이는 누워서 다 해결한다. 누워서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티브이도 보고 시간이 너무 빨리 잘 가서 문제다. 여기서 등장하는 핫템은 '각도 조절 책상'이다. 책상판의 기울기와 책상의 높이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고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서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책을 얹어 놓기도 하고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놓기도 하는데, 내 눈높이에 딱 맞춰 놓으니 목이 불편하지 않다. 영화 한 편 틀어놓고 이불 폭 덮고 있으면 여기가 바로 천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괴롭히는 이 시국에 발맞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요즘 더 열심히 집순이 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에 나만의 '집순이 핫템'이 보태져 더욱 쾌적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모두들 각자만의 핫템을 찾아 좀 더 즐거운 집콕 생활을 즐겨보자.
'바디필로우와 각도 조절 책상만 있으면 난 흙침대 위에서 언제까지고 계속 누워있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