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대학교,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내 또래들은 통상 네 권의 졸업앨범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살면서 이 앨범들을 과연 몇 번이나 펼쳐볼까?
학교를 다닐 때는 같은 학년이니까 오며 가며 최소한 눈인사라도 했을 텐데, 지금은 사진을 뚫어져라 암만 쳐다봐도 얘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는 거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 두꺼운 앨범에 내 사진은 고작 한 페이지 남짓인데 이렇게 공간을 많이 차지하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옆에는 졸업장 4개와 함께 세 권의 파일도 나란히 같이 있었는데, 유치원 다닐 때부터의 각종 상장과 성적 통지서들이 가지런히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결단을 내렸다.
마침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죄다 꺼내어 하나하나 매의 눈으로 가져갈 것과 버릴 것을 구분했다. 졸업앨범은 내 사진과 함께 아직 연락을 하거나 혹은 아니더라도 기억하고 싶은 친구의 것만 잘라냈다.
상장과 성적표들은 졸업앨범보다 결정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뭔가 추억이다 싶고 원본인데 버려도 되나 하는 고민이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가져가자니 지금 발견한 것도 몇 년만인데 하는 생각에 선뜻 손이 안 갔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게 스캔이었다. 모조리 컴퓨터로 옮기고는 다 파쇄했다.
졸업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초-중-고등학교의 것만 스캔한 후 처분하고 대학교 졸업장은 살려두었다(?) 내 거금이 들어간 물건이라 왠지 모르게 보관해야 할 것 같았다.
주변에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니 앨범을 왜 버리냐고, 졸업장을 어떻게 버릴 생각을 하냐고 기함하더라. 지금은 안 보더라도 나중에 더 늙으면 볼 수도 있을 텐데 후회할 거라고, 나보다 더 내 물건의 종말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렇게 처분하고 이사를 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솔직히 이 글 쓰면서 생각이 났다.(완전히 잊고 살았다) 쓸모없는 것들을 정리하고 나니 책꽂이 자체가 필요 없어져서 책꽂이마저 없애버렸더니 그만큼의 공간이 더 생겼다. 아쉬움은 작았고 만족감은 컸다.
버린 것들이 혹여 나중에라도 궁금해진다면 스캔해둔 것을 보거나 요즘은 성적증명서나 생활기록부를 교육행정정보시스템 NEIS(www.neis.go.kr)에서 출력할 수 있으니 문제없다. 요즘은 사진도 인화하지 않고 컴퓨터나 휴대폰에 보관하거나 인스타그램 등에 올리지 않나. 실물로 보관해봤자 오히려 더 안 보게 된다.
원본, 실물,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만 '진짜'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지난날 학생이었을 때의 크고 작은 추억, 친구들과의 이야기, 내가 가졌던 꿈과 열정들은 몇 장의 종이에는 다 담기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향수, 추억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면 그 시절 나와 함께 했던 친구를 만나거나 그 시절 감사했던 은사님을 찾아뵙는 게 나을 성싶다. 가을이라 그런가, 물건보다 사람이 더 그리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