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 없는 직장인이 있을까. 나는 월요일로 넘어가는 일요일 저녁 밤을 거의 지새운다. 자려고 누워도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다. 지난 금요일 퇴근 전에 미리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치우고 월요일에 할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고 오면 좀 낫긴 하지만,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놔두고 오면 그 정도가 굉장히 심해진다.
불안함을 가지고 퇴근하는 거다.
원인을 고민해봤다. 나를 너무 못 믿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기록하고 또 메모하고 그마저도 어서 지워버릴 수 있도록 애썼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메모가 더 나를 괴롭게 했고 To-Do-List는 언제고 내 눈앞에 아른거리면서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 해내야 한다, 완벽해야 한다,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극단적인 방법을 써봤다. 다 놓는 것. To-Do-List를 없애고 알람 기능을 지워버렸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해냈고, 언제나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또 언제나처럼 난 잘 해결했다. 혹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주변의 도움으로 풀어나갈 수 있었고 그렇게 다가온 일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싱겁게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내 상상 속 최악의 상황은 없었다.
그 후로 월요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의 정도가 조금 줄어들었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습관은 무서운 것이어서 종종 잠 못 드는 밤이 찾아오곤 했다. 그래서 그럴 때 쓰는 나의 특효약을 개발했다(?)
일단 눈을 감는다. 그리고 광활한 대지를 떠올린다. 혹은 푸른 바다, 넓은 하늘 어디든 좋다. 심지어 우주면 더 좋다. 넓고 멋진 곳이면 어디든 된다.
그리고 맘에 드는 한 곳을 열심히 확대한다. 마치 손가락 두 개로 휴대폰 화면을 키우듯이. 확대를 다 한 뒤 예쁘게 콕! 작은 점 하나를 찍는다. 그런 다음 확대한 걸 다시 원래 크기대로 돌려놓는다.
자, 아까 그 점이 보이는지? 제대로 확대해서 잘 찍었으면 처음 그 시야에서는 점이 보일 수가 없다. 그럼 잘 찍은 거다.
그게 '나'다.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의 크기다.
본질적 문제는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완벽히' 할 수 없고 '다' 해낼 수도 없으며 실수하지 '않을'수도 없는데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그려놓고 거기에 끼워 맞추려는 강박에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 하나쯤이야'를 하자는 게 아니다. 나의 위치를 정확히 판단하고 과한 강박을 떨치기 위함이다. 이 방법은 잘만 시도하면 꽤 효과가 있다. 당장 모든 걸 해결하는 슈퍼 히어로가 되어야만 한다는 나를 워-워- 가라앉힐 수 있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우선 A4 한 장을 가로로 놓고 반으로 접었다 편다. 왼쪽에는 지금 나를 괴롭히는 각종 고민들, 일거리들을 죄다 적는다. 적힌 것들을 보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결할 수 있겠다 싶은 것 혹은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 되겠다 싶은 것들을 지운다. 그럼 거진 다 지워진다.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애초에 잘못된 항목이다. 시간이 들어도, 도움을 받아도 지울 수 없는 것이라면 누가 와도 불가능한 문제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이제껏 내가 해낸 성과들, 작지만 뿌듯한 이야기들을 적어 내려 간다. 생각보다 꽤 많다. 그럼 왼쪽보다 오른쪽이 훨씬 의미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알 수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왠지 모를 힘이 솟는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많은 걸 기대하지는 말자. 몇 번 해본다고 해서 안 오던 잠이 갑자기 쏟아지지는 않는다.
다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나'를 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 과정을 지속한다면 점점 차오르는 자존감과 함께, 이전에는 엄두도 못 냈던 일들에 도전하는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그러고 있으니, 혹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월요병에 헤롱 거리는 직딩들이 있다면 꼭 시도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