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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Oct 13. 2020

'예쁜 쓰레기' 안 만드는 법

물건을 구입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미리 정해둔 가격, 브랜드, 디자인, 품질, 색상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만 비로소 장바구니에서 주문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빠지지 않는 기본 전제가 있으니, 바로 '실용성'이다. 무슨 물건이 되었건, 그것은 일단 '쓰임'의 필요에 의해 선택된다. 그러나 이를 깡그리 무시한 채 장바구니를 탈출한 것들이 있으니, 바로 '예쁜 쓰레기'들이다.


예쁜 쓰레기의 종류는 다양하다. 나하고는 맞지 않는 색이지만 예쁘니까 구입하는 섀도, 립스틱 같은 화장품이나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용 메모지와 스티커들, 귀여운 인형, 그릇이나 컵, 텀블러, 또 여행지에서 사 오는 기념품, 마그넷, 엽서 등.

이것들의 공통점은 일단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다는 명언처럼, 아마 하늘 아래 같은 예-쓰는 없기 때문인 것 같다.(예쁜 것들이 모여있으면 더 예쁘다!) 또 이것들은 사용을 목적으로 구입한다기보다는 보통은 전시용이다. 일렬로 나란히 세워두면 기부니가 조크든요.

이렇듯 예쁜 쓰레기는 실용성이 있더라도 그 정도가 현저히 떨어지거나 아예 없는 수준인 물건이다. 그럼 왜 사느냐, '예쁜 것으로 쓸모를 다하기 때문에' 우리는 구입한다. 소비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는다는데 있다. 기본적으로 소비가 주는 기쁨은 지속성이 매우 짧다. 그래서 예쁜 쓰레기의 구입은 한두 번에서 그칠 수가 없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더한 문제는 이미 가지고 있는 예쁜 쓰레기는 더 이상 나를 설레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예-쓰들은 그저 자리 차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나 또한 꽤 많은 예쁜 쓰레기들을 갖고 있었다. 귀여운 것에 마음을 쉽게 뺏기는 지라, 이 나이에도 각종 캐릭터들을 참 많이 애정 한다. 그 덕에 알록달록 예쁜 디자인의 필기구들을, 또 작은 인형들이 대롱대롱 달린 키링들을 많이도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잠옷도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걸 골랐었다. 물건을 고를 때 가지는 중요한 기준들을 망각한 채 단지 '귀여움'으로만 선택했으니, 뒷감당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예쁜 필기구를 볼 때마다 기분은 좋았지만 필기감은 영 엉망이어서 결국 예쁜 것들은 잘 꽂아두고 다른 펜을 찾아 써야만 했으며, 가뜩이나 요즘 번호인식이니 지문인식이니 키도 없는 판에 키링은 처치곤란이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처분한 게 한가득이다. 잠옷은... 아마 올해만 입으면 헤어져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예-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나는 물건을 구입하기 전 꼭 통과해야 하는 몇 가지 질문을 만들었다.

1. 왜 사려는 건가(이유) →  귀여워서, 예쁘니까, 같은 색은 없으니까 → No!

2. 어디에 쓸 건가(용도) →  책상 위에...? 서랍 위에...? → No!

3. 이미 가지고 있는 비슷한 물건은 없는가(중복) → 있긴 한데 그건 이거랑 모양이 다르고... → No!

4. 캐릭터 없어도 살 건가(제일 중요) → 그럼 왜 사? 그것 때문에 사는 건데...? → No!

예쁜 쓰레기를 앞에 두고 이 질문들을 모두 통과하기란 쉽지 않았다. 덕분에 더 이상 나는 예-쓰를 쟁여놓지 않게 되었고,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물건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살기 팍팍한데, 내가 오늘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이 정도 물건도 하나 마음대로 못 사는 건가?', '아니 이게 고작 얼마 한다고, 자리 차지해봐야 이 작은 게 얼마나 차지한다고 이렇게 고민하면서 주저해야 하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나 고생하며 번 소중한 내 돈을 엄한 데 쓰는 게 더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예쁜 쓰레기는 '예쁜'이 아니라 '쓰레기'에 방점을 둬야 한다. 아무리 예뻐봤자 쓰레기인 것을, 내 귀한 돈을 쓰레기 사는 데 들일 수는 없지 않은가. 기회비용을 잘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물건이 있다. 나만의 선명한 기준이 서지 않으면 그 어떤 물건이든 한 순간 '예쁜 쓰레기'가 될 수 있다. 매사 무엇을 선택함에 있어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본다면 나는 더 중요한 무엇을 놓칠 수 있다. 돈도, 시간도, 마음도 한정적인 자원이기에 집중할 것을 명확히 하고 나머지는 버릴 수 있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세상 가장 소중한 나 자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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