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일

1. 증발_3

by 원유

증발 후 처리는 꽤나 난감하다. 일단은 실종신고를 해야 하겠지만 어쩔때는 실종신고보다 사망처리가 나을 때도 있다. 채무나 상속 같은 부분에 있어서 그렇다. 안 그래도 얼마전엔 누군가 증발자의 장례를 치루려 했다가 여러 단체로부터 항의와 협박을 받은 적이 있다. 항의를 한 쪽은 증발자들을 기다리는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일 것이고 협박한 쪽은 증발자들과 법적으로 골치 아픈 관계에 놓인 사람들일 것이다. 내일 아침이라도 증발자들이 짠하고 나타나주면 좋으련만 첫 증발이 일어난 지 이제 3년이 다 되어간다. 공기 중에서 증발한 이들이 안락한 공간에 무사히 순간이동해주었으면 지금까지 안전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절망적인 상황이 예상된다. 하지만 사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망했다는 증거는 없다. 살아갔다는 증거가 있지만 사망했다는 증거는 없으니 사망으로 성립할 수 없다.


오순경은 정 많고 착한 사람이었기에 동료들은 오순경의 빈자리에 각자 무언가들을 올려놓고 안녕을 바랬다. 깊은 마음을 담은 편지나 그가 좋아하던 피규어나 간식, 그를 그린 그림 등등. 하지만 누구도 국화를 놓지는 않았다. 나는 오순경이 평소 국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에 국화를 올려두려다가 말았다. 대신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구분하기 쉽게 설명한 교양서를 올려두었다. 다시 돌아오면 그래도 도움이 될만한 것이 좋을 것이다. 더불어 오순경과 함께 살던 오순경의 남동생을 주시하기로 했다. 기억하기론 오순경은 어머니와 남동생 셋이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3차 증발 때 증발하셨다. 철두철미한 오순경이 증발을 대비해 뭔가를 준비해뒀겠지만 그래도 남동생의 생계가 막막할 것이다. 오래전 과거에는 이런 개인의 가정사를 집단내에서 아는 척 모르는 척 챙기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개인의 가정사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려다간 관음증 환자나 스토커로 오인받기 딱 좋다. 사실 오순경의 남동생이 정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면 될 일이다. 개인에게 어떤 사고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하는 곳 중 하나가 누이의 전 직장이니 어찌되면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이성적이고 차분한. 누군가는 싸이코패스로 오해했던 나의 생각이고. 유일하게 남은 가족마저 잃은 10대 소년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스토커처럼 오순경의 기록부를 조회해서 집주소를 알아내고 남동생 오성식군이 다니는 중학교를 알아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오성식군을 찾아갔다. 하필 비가 오는 밤시간이었다. 오군은 기척이 밝지 못한지 내가 따라와 자신을 부르는 지 몰랐던 거 같다. 오군은 뒤를 돌자 자신을 부르는 190cm의 하얗고 마른 남자를 보고는 주저 앉았다. 나의 학창시절 별명은 류크, 슬렌더맨 따위였다. 오군에게 따뜻한 음식을 사주며 안심시키곤 명함을 건네주었다. 다행히 오군은 영리한 편이었고 오순경이 만일에 사태에 대비해 남긴 플랜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플랜 밖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없진 않기에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오순경과 비슷하게 잘 웃는 오군은 알겠다고 했지만 다시 전화를 할 것 같진 않았다. 슬퍼보이게도 나이와 다르게 자립심이 강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오순경이 증발하고 나서는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원래 같았으면 다른 동료가 오순경의 자리를 매꿨을 테지만 오순경처럼 경찰이라고 증발을 피할 순 없기에 경찰 쪽에서도 인력난이 꽤나 문제였다. 다행인 건 앞서 말한 것처럼 강력범죄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나는 치안유지 위주의 일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치안유지라고 하는 일이 평화롭고 느슨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점검과 보고라는 일은 작게 보면 작은 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크게 보면 매우 큰일이다. 두 명이 함께 하던 일을 한 명이 하게 되었으니 예전과 비교해서 피로도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일을 하다 보면 적응하는 법. 나는 점점 두 명이 하던 일을 혼자서도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조금씩 짬을 낼 수 있게 될 무렵, 내 관할의 첫 방화사건을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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