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일

1. 증발_4

by 원유

첫 번째 방화사건은 소규모 아파트 단지에 위치한 3층 가정집이었다. 처음엔 방화사건이라 생각하진 못했고 종종 있는 화재사고라고 생각했다. 가족 구성원이 갑자기 모두 증발돼 버린 뒤 가전제품이 관리 미흡으로 화재를 일으키거나 홀로 남은 반려동물이 가전제품을 건드려 일어나는 화재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홀로 남은 노인이 여러 이유로 불을 피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뚜렷이 방화사건이었다. 누군가 화염병을 만들어 3층에 위치한 피해가구 창으로 던져버렸던 것이다. 범인은 조악하게 만든 화염병을 던지자마자 바로 자수를 했고 다행히 집에 사람이 있어 바로 불을 끌 수 있었다. 범인은 30대 남성으로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같은 층에 혼자 살고 있었다. 피해가정에 따르면 말을 섞는 사이는 아니고 가끔 마주쳐 인사를 하던 정도. 범인에게 범행 이유를 묻자 범인은 피해가구 구성원 모두가 증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했다. 사람들의 감정의 폭발이 활발했던 증발 과도기에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비뚤어진 생각이지만 내 주변은 다 잃었는데 멀쩡한 너가 맘에 안든다는 이유의 범죄가 횡행했던 것이다. 다행인지 괴상인지 앞서 말했듯 엄청난 충격의 연속 뒤로 사람들에게서 화라는 감정이 무뎌지는 추세라 근래에는 이런 일이 없었기에 새삼스러울 따름이었다. 어쨌든 이런 일에 대해서는 과거에 경험과 메뉴얼이 있기에 절차대로 일을 진행하려는데 범인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자신이 불을 지르려 했던 집에 증발했다가 돌아온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범인에 따르면 피해가정에 할머니가 1년 전 증발했던 적이 있었는데 되돌아 왔고 그 가족은 외부에서 이 사실을 알면 피해가 갈까 할머니를 숨기고 지내왔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진술이지만 아직까지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증발됐던 이들이 다시 돌아온 경우가 사실로 검증된 일은 없다.


자수한 범인의 처리를 마쳤지만 범인이 했던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사후 처리 보고 핑계로 피해가정을 찾았다. 문을 두드리자 살짝 두려움을 머금은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지구대 소속 경찰관이라고 말하며 외시경에 경찰명함을 들이대자 여인은 문걸쇠를 풀지 않은 채로 살짝 문을 열어 나를 확인했고 그제야 문을 열어주었다. 여인은 내 신분을 확인했음에도 경계하는 눈치였다. 나를 소파로 안내한 뒤 냉장고에서 작은 드링크음료를 하나 꺼내 건내주었다. 나는 간단한 후속 점검이라고 말하며 사건 뒤로 특이사항은 없었는지 물었고 여인은 바닥 장판이 살짝 그을린 것 말고는 큰일이 없다며 특이사항이 생기면 연락 주겠다고 했다. 여인은 내가 빨리 가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나는 범인이 이야기 한 내용이 어떤 부분에서 나온 오류였는지 알고 싶었기에 우회하지 않고 할머니에 대해 물어봤다.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에서 할머니가 인자한 미소로 웃고 있었다. 여인은 한숨을 푹 쉬고는 사실 할머니가 쌍둥이라고 말했다. 한 달여 전 원래 계시던 할머니가 가족들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도중 증발했고, 그 엘리베이터에 최근 화염병을 던진 남자도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증발하고 나서 가족들은 큰 슬픔에 빠졌었는데 곧 자매 할머니의 가족들이 자매 할머니만 남기고 모두 증발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큰 충격을 받아 자매 할머니를 집에 모시고 있었다고 했다. 실종 신고와 전입신고가 이루어 졌다면 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최근 큰 변화를 겪은 이 가족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범행을 저지른 남자는 1년 전 자매 할머니의 집과 비슷하게 자신 빼고 모든 가족이 한 번에 증발했는데 남자를 조사한 동료에 따르면 증발한 가족에 대한 집착이 상당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증발 사태 이후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증발했던 이와 비슷한 인물을 보곤 증발인이 되돌아왔다고 믿거나 애초에 증발하지 않았던 이가 증발에서 되돌아왔다고 믿어 집착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피해가족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고 때문에 최대한 자매 할머니를 외부에 숨기고 싶었지만 어떻게 집에서만 지낼 수 있겠는가. 같은 층에 살고있는 남자에게 자매 할머니가 노출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사실 남자는 여러차례 피해가정에 찾아와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했고 피해가족이 여러차례 설명을 했지만 믿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여인을 위로하며 실종/전입신고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미리 이야기 해놓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남자에게 공감이 되어 진짜 할머니가 증발했다가 돌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정말 증발했다가 돌아오신 거고 자매 할머니와 가족은 한꺼번에 증발했다. 증발에서 돌아온 할머니를 맞은 가족은 앞으로 불편해질 상황을 대비해 자매 할머니를 핑계거리로 만든다. 사실 갑자기 멀쩡하던 사람이 증발하는 마당에 증발했던 사람이 되돌아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때 문을 열고 할머니가 나왔다. 내가 일어나 할머니께 인사하자 할머니는 방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인지 여인이 했던 이야기를 나에게 거들며 부연 설명을 했다. 내가 이미 충분히 들었다며 안심시켜 드리자 할머니는 웃으며 내 눈을 지긋히 쳐다봤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집 밖을 나섰다.


남은 잔업을 하러 서로 돌아왔다. 최경사가 피투성이에 얼굴이 곤죽이 된 한 남자와 분이 안 풀린 듯 씩씩대는 남자를 취조하고 있었다. 나는 차분했던 분위기가 최근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오래간만에 피를 본지라 옆자리에 있는 홍순경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홍순경은 ‘증발인 저장소’관리자가 구리 구역내에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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