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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Dec 26. 2022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의 함정

sns를 시작한 후 만났던, 잊지 못할 댓글이 몇 개 있다. 그 댓글들은 거의 지나가는 나그네가 쓴 글이었다. 그중 하나의 글을 떠올려 본다. 그 댓글은 '효'에 대한 나의 글을 읽고 한 맺힌 자기 이야기를 쓴 글이다.




"저는 집안의 막내아들입니다. 다른 형제들보다 공부도 많이 못 했습니다. 하지만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셔온 건 저예요. 다른 형제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자주 하지 않았어요. 저는 결혼도 안 하고, 지금까지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있습니다. 다른 형제들을 생각하면 미워죽겠어요. 저 하나만 자식 노릇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댓글을 읽는 순간 어떤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막내며느리로 살면서 나름 효도한다고 생각하며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내 안에 이런 비슷한 마음이 있던 건 아닐까, 떠올렸던 것이다. 아니라고, 순수한 마음으로 모시고 살았다고, 나의 긴 시집살이에 대해 스스로 평가를 내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 댓글을 읽고 떠오른 지인이 한 사람 있었다. 그녀는 자라면서 다른 형제들과 비교당하며 받은 상처가 크다고 내게 말했다. 그런데 평범한 다른 형제들에 비해 유독 '효'에 집착을 했다. 그러니 계속 '니가 최고다'라는 칭찬을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들으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주 눌러놓은 화를 표출했는데, 그 정도가 좀 심했다.


나의 어머님에 대한 사랑이 정말 순수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든 사건이 있었다. 어머님이 말기 암으로 고통받으셨던 그 시기에, 모든 경비를 아주버님과 형님이 책임을 지고 시댁 삼 남매에게 정산한 A4용지 복사본을 나누어주셨을 때였다. 거기에는 아주 적은 금액의 물건까지 빼곡히 적혀있었다. 파스 3천 원, 물 티슈 2천 원, 연고 4천 원, 등등... 사는 물건 모든 것의 영수증을 달라고, 정산에 넣겠다고 하셨지만, 우리 부부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 집에는 아주버님이 몇 번에 걸쳐 주셨던 A4용지들이 있다.


두 분의 그런 모습에 내 마음에 뭔가가 불쑥 올라왔다. 내가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데, 내가 어머니 모시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매달 드리는 것 말고도 나 혼자서 어머님께 드린 목돈이 얼마나 많았은데... 내 머릿속은 계속 그런 걸 떠올렸고, 내 가슴은 답답함과 서운함이 자꾸 올라왔다. 원하시는 1/N을 정확히 입금해 드렸고, 내 상식으로는 '저건 아닌데'라는 마음이 올라오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어머님을 잘 보내드리기 위해 그저 마음을 쓸어내리고, 오로지 어머님만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런 분란 없이 어머님을 보내드릴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했는데'가 내 마음에 자리하는 걸 보며 나는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그런 일이 현실로 닥치니, 내가 했던 많은 것들이 떠오르며, 나 스스로 후한 효도 점수를 매기고 살아왔다는 걸 알았다.

어느 상담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그래서 그 족쇄로 자식이 얼마나 심적 부담을 크게 느끼는지 모른다고, 반복되는 그 말이 자식을 점점 멀어지게 한다고도 했다.


'했다는 마음, 주었다는 마음'만 잘 비우고 살아도, 우리의 삶이 더욱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맙고, 귀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우리 곁에 많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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