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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Nov 30. 2022

"이젠 아무 걱정 없다!"

△ 분가 이후 어머님이 가지고 오셨던 먹거리! 정성스러움이 최고의 강점이셨던 우리 어머님을 나는 점점 닮아가고 있다. 나는 그때 먹기 아까워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이다.






"이젠 아무 걱정 없다!"


이 말은 내가 아는 여인들 중에 가장 고단한 삶을 사셨던 나의 시어머님이 자주 쓰시던 말씀이었다. 내 오랜 시집살이, 그 시절에도 어머님이 많이 쓰셨을지 모르는데, 내 기억에는 해마다 김장을 하시고 난 후에 어머님이 꼭 이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흘러, 큰딸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수업을 전혀 하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학교에 6개월 병 휴직 진단서를 냈고, 이어서 또 6개월, 이어서 사직서를 냈다. 그 원인을 오랜 시집살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판단하신 의사 선생님은 약과 함께 분가를 권유하셨고, 나는 과감하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한 여인으로서 너무나 고생 많으셨던 어머님과 평생을 함께 살다가 하늘나라로 고이 보내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나오면 나는 아직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어쨌든 우리는 분가 이후에도 며칠에 한 번 꼴로 자주 만났고, 내가 몸이 아프거나, 집안이 엉망진창일 때도 아무 연락 없이 우리 집에 오시던 어머님을 나는 그냥 받아들이고 살았다. 17년을 모시고도 살았는데, 그 정도의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진심, 나는 어머님을 안쓰러워하고, 마음속 깊이 좋아하던 며느리였다.


어머님의 인생에는 별 같은 두 사람이 있다. 너무나 똑똑하고 잘 생긴 당신의 큰아들과 내가 낳은 큰딸이었다. 아주버님은 어머님의 아들이자, 연인이자, 남편이었다. 불면 날아갈까, 가난한 살림에도 온 정성을 다해 키운 자식이었다. 또 한 사람인 우리 큰딸은 '여자, 딸'을 싫어하는 어머님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존재였다. 당신 딸도 아들과 차별해서 키우셨고, 딸이 낳은 딸을 보고 산부인과에서 홱 돌아 나오셨다는 이야기는, 시누님 입을 통해 들었다.


내가 봐도 착하고, 기특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우리 큰딸은 어머님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아이가 무슨 상을 받았는지, 어떤 기특한 행동을 했는지, 할머니께 어떤 선물을 드렸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저렇게 사랑할 수가 있구나'하는 걸 어머님을 보며 알았다. 더군다나 두 며느리에게 특히 힘든 시어머님이셨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은, 충청도 말로 성격이 벨쭉맞은(시막내외삼촌이 나를 위로하느라 자주 쓰신 단어이다) 분이셔서 더욱 그랬다.


어머님에게 그런 존재인 나의 큰딸이,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합격했을 때 어머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님이 1인 방송국이 되시어 딸의 합격 소식은 여기저기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때의 어머님이 하신 "이젠 아무 걱정 없다"라는 그 말씀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실 때, 아무 기운이 없어 누워계시다가도 그 두 사람이 병실 문을 열면 물개 박수를 치시던 우리 어머님! 어쩌면 어머니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다 가신 분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그 존재를 자주 보고 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어머님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아무 걱정 없다'라는 말은, 나에게도 자연스레 스며들었는지, 내게 긍정의 힘을 자주 심어준다. 감사하는 마음이 이어지게도 한다. 내뱉은 말은 씨가 되어 현실을 창조한다고 한다. 아홉 가지 좋은 일이 있는데도 한 가지 근심거리가 있을 때, 보통의 사람들은 그 한 가지 생각에 빠져 하루의 긴 시간을 보낸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생각의 늪'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니까. 평범한 우리가 100% 여여한 삶을 살아내기는 어렵겠지만, 의도적으로 긍정의 말과 감사 습관으로 어느 정도는 평화 안에 머무르는 하루를 보낼 수는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나의 하루도, 나의 인생도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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