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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Nov 17. 2022

그게 어머님의 미안하다는 표현이셨구나!

친구 아들의 결혼식장에서 교대 졸업 후 처음 만난 친구와 나눈 이야기이다. 신랑의 엄마인 나의 절친을 통해 그 친구에 대해서 종종 듣곤 했다. 그 친구는 연세 드신 시부모님을 위해 반찬을 자주 만들어 갖다 드리는 맏며느리라고 했. 개그맨처럼 유머가 풍부했던 그 친구는 어느새 조신한 분위기의 중년 여성이 되어 있었다. 친구가 내게 말했다.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사람이 제일 대단해 보인다고. 몇 년도 아니고, 17년을 모셨으니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말은 안 했지만 그 친구 내면에 '시부모를 모시는 것'이 어떤 부담감으로 자리하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집에 돌아와 문득 떠올랐다.

시부모님이 연세가 드시면, 아무리 요양원이 많다고 해도 맘 편히 바로 보내드리는 자식들은 없을 것이다. 우리 어머님도 자식과 같이 살고 싶어 하셨듯이 아직도 많은 어르신들은 그런 마음이 있으신 듯하고, 시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요양원 가시는 걸 서운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다 같은 자식이지만 우리나라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심적 부담을 느끼는 맏며느리가 꽤 있다. 모시고 살지 않더라도 그런 맏며느리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무겁고도 미묘한 시어른과 며느리의 관계는, 아직도 진행 중인 경우가 많다. 주말 드라마 '현재는 아름다워'의 알아주는 효부 며느리도, 시어머니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속상해하다가 남편과 말다툼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있었다. 분가 후 시어머님의 큰 사랑으로 내 상처는 거의 아물었고, 하늘나라에 계신 시어머님이 나의 사랑으로 남아 계시지만, 그런 드라마를 보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나곤 한다. 특히나 함께 사는 긴 세월 동안 가시가 돋친 말씀을 습관적으로 하셨던 분이라 나는 거의 매일 속상했었기 때문이다.


시집살이를 하면서 내가 굉장히 힘들었던 일들 중 하나는, 짜증 섞인 어머니의 '말 가시'였다. 울고 싶을 정도로 속상해 죽겠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5분도 채  되지 않아  "에미야, 너 이거 먹을래?"라고 말씀하시는 거였다. 그러시면 말은 못 하고, 내 속상함은 분노로 바뀌어 심장이 벌렁벌렁 요동을 치곤 했다. 겉과 속이 다르지 못한 성격인 나는, 함께 살아야 하는 어르신이니 마음을 풀려 애를 쓰면서 나를 달랬다. 가장 강력한 방법은 어머님이 살아온 삶을 곱씹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내 안의 측은지심을 이용해 어머님을 이해하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어머님 말씀대로 피눈물로 자식을 키우셨던 분'이시니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시니까. 그런 내 상처와 노력이 나를 서서히 병들게 하는 줄 모른 채 난 하루하루를 그렇게 버티어 나갔다.

몇 년 전 어느 날이었다. 내 몸이 많이 아프고, 속이 많이 상했던 날, 나는 내가 생각해도 아니다 싶게, 내게 말을 거는 아들에게 기분 나쁜 말투로 대꾸를 하고 있었다. 순간 바로 후회가 되었다. 삼 남매 키우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아는 나였지만, 그때는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아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을 가지고 "너 이거 먹을래?"라고 미안함을 표현했다. 순간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떠올라 깜짝 놀랐다. 우리 어머니는 늘 화가 나 계셨다. 상황이 좋은 현실이었는데도 살아온 삶이 억울하고 또 억울하셨던 것이다. 여자 혼자의 힘으로 남편과 세 아이를 건사하시면서 세상 풍파를 몸으로 막으며 사셨던 어머님의 울화는 쌓이고 쌓여 늘 신경질적인 말투로 굳어지셨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님 자식들이나 두 며느리는 그런 면이 꽤 힘들어 자주 마음을 다쳐야 했다. 그러니 오랫동안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나는 어땠을까.


"에미야, 이거 먹을래?"가 "에미야, 아까는 내가 미안했다."라는 어머니의 표현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우리 어머니도 그런 자신이 싫으셨을 것이다. 아닌 걸 알면서도 마구 튀어나오는 '말 가시'가 싫으셨을 것이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상대방이 변하길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만 갈고닦으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분가 이후 180도 달라지셨다. '말 가시'가 사라지고, 온유하고 따스한 말투로 바뀌셨다. 그런 어머니는 당신을 가장 힘들게 여겼던 맏며느리와 막내며느리인 나의 존경까지 받으셨다.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가!


살면서 때로 용기가 생기지 않아 주춤거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가족을 끝까지 책임지셨던 어머니, 당신의 악습을 과감히 끊어내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 어느새 내 안에 자신감과 함께 커다란 에너지가 생기곤 한다.


"나의 그리움이신 어머니, 이렇게나 제가 당신을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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