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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Dec 18. 2022

왕조개 미역국

<시어머님 비문>

내가 정한 문구이다






어머님이 말기암으로 투병하고 계실 때, 우리 모두는 암이라는 사실을 어머님께 숨기고 살았다. 하지만 입원하시기 전에는 암환자에게 나쁜 음식이 무엇인지 공부를 하며 어머님 음식을 만들곤 했다. 미역은 매우 좋지만, 그 안에 고기를 넣으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해보니 왕조개가 암환자에게 좋다는 걸 알아내었고, 왕조개 미역국을 자주 끓여드렸다. 어머니의 식사량은 1/3 공기 정도였지만, 미역국은 한 대접을 다 드실 만큼 좋아하셨다.


그 이후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는 물김치를 드시고 싶어 하셔서, 내가 맛있게 담글 자신은 없고, 단골 식당 사장님께 부탁해서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스타일로 만들어진 물김치를 사다가 드렸다. 어머님은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있다 하시며 잘 드셨다. 지금은 맛있게 뚝딱 잘 담그는 백김치를 그 당시에 만들어 어머님께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첫 명절인 추석에 시누님 가족과 함께 어머님을 뵈러 갔다. 시누님이 양지를 넣은 미역국을 어머님께 올렸다. 내가 준비한 음식과 과일이 몇 가지 있었지만, 유독 그 미역국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시집와서 어머님께 배운 음식들 중의 하나가 양지 미역국이었다. 양지를 주먹만 한 크기로 집어넣고 한 시간 정도 푹 끓인 후, 손으로 고기를 찢어서 다시 살짝 더 끓이는 방식이다. 얼마나 깊은 맛이 있는지, 우리 가족의 밥도둑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 생일이 아닌 날에도 가끔 미역국을 끓이곤 한다.


어머님의 어머니이신 시외 할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시골에 다녀오신 어머님이, 모시고 사는 며느리 흉을 본 적이 있다. 소주와 커피를 매우 좋아하셨던 할머니께 절대 드리지 않아, 당신이 몰래 드시게 했다고 말씀하셨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먹고 싶은 거 드리는 게 옳다는 생각한 것이다.


시누님의 양지 미역국을 보는 순간, 어머님의 그 말씀이 떠올랐다. 왕조개 미역국도 맛있게 잘 드셨지만, 양지로 푹 끓인 미역국도 끓여드렸어야 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입원하시기 전에는 어떻게든지 나아지시기를 바라면서 차가 버섯도 드시게 하고, 음식도 신경을 쓰던 시기이라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그랬을 거란 생각이


어머님이 내게 남겨주신 선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먼저 사랑하는 나의 남편을 낳아주신 것, 그리고 우리 삼 남매의 엄마로 살게 해 주신 것, 그리고 음식은 정성껏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 세 가지가 바로 떠올랐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어머님 덕분에 '음식이 사랑'이라는 큰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기에, 그 사랑으로 우리 가족은 더 행복해지고, 더 열심히 살아가는 힘을 얻고 있지 않은가. 나이 들어가는 지금의 내 모습이 꽤 만족스럽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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