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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Nov 25. 2022

시어머님의 마지막 소풍

2017년 4월 18일 새벽에 쓴 글입니다




지금 우리 안방에서는 어머님이 주무시고 계신다. 어머님 침대 옆에는 간병 아주머님이 주무시고, 내 남편은 거실 바닥에서, 우리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자고 있다. 나는 한두 시간 살짝 잠이 들었다가 깨어서, 어머님 인생을 생각하며 잠시 눈물짓다가 이렇게 글을 쓴다.


입원 중에 우리 아이들과 누워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어머님 소망을 난 너무나 많이 들었다. 한 달 내내 자주 말씀하시던 걸 못 들은 체할 수는 없었다. 우리 아이들을 정성스럽게 키워주셨던 시어머님에게 아이들이 어머님의 애인인 것이다. 몸이 많이 아프시니 더 보고 싶고, 더 그리우셨던 것이다. 감사하게도 어머님의 돌발적이고도 무서운 통증이 5~6일 정도 없었다. 더군다나 입원 한 달이 되면 하루라도 퇴원하고 다시 입원해야 한다는 병원 규정까지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난 그 몫을 내가 하겠다고 지난 목요일 형님 부부에게 말씀드렸으나, 그 두 분은 의사 선생님께 어머님을 모실 집이 없다는 식으로 조르고 또 졸라 의사 선생님을 설득하고 있었다. 난 왜 간병인이 어머님께 퇴원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지, 왜 어제까지도 '되도록이면 퇴원을 시키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틀 전에 의사 선생님을 몰래 만난 나는, 형님 부부가 의사 선생님께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을 확인하고 너무 많이 놀랐고, 많이 울었고, 사람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꼈다. 돌아가는 이상한 상황을 남편에게 말하고 남편이 다툼 없이 잘 풀어가려고 일찍 병원으로 퇴근하여 형님 부부를 만났다. 아주버님은 이미 모실 준비를 다 끝냈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퇴원하는 방향으로 노력해 보겠다는 말을 했다고 난 들었다. 


그런데 왜 그다음 날인 어제도 간병인은 어머님께 퇴원 말을 꺼내면 안 되는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걸까? 난 아주버님을 믿겠다는 남편에게 믿지 말라고 했다. 그냥 맡기고 있으면 두 사람 뜻대로 흘러가게 될 거라고 했다. 아주버님께 의사 선생님을 같이 만나러 가자고 연락을 하라고 코치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 어머님 모실 준비로 집안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때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아는 내 절친에게 전화가 왔다.


"형님 부부 믿지 마. 어머님을 진짜로 퇴원하시게 하고 싶다면 청소는 그만하고, 너도 병원에 같이 가서 넷이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 그래야 퇴원이 가능할 것 같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해."

병원에 갈 생각은 안 하고 어머님과 간병인 모실 준비만 하고 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나는 남편에게 나를 태우고 같이 가라고 연락을 했고, 매우 급한 속도로 집안 정리를 다 끝냈다. 남편이 사 온 김밥 한 줄을 세 시가 다 되어 먹고, 부리나케 병원을 향했다. 가면서도 심호흡을 하며 화를 다스리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즈음, 내 굳은 얼굴은 어느 정도 펴지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병원 로비에서 형님 부부를 만나서 대화를 했다. 난 모실 준비를 다 끝냈다고, 어머님이 늘 소망하시던 퇴원을 꼭 했으면 좋겠다고, 서울에서 근무하는 큰딸까지 밤에 내려오기로 했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남편의 의향을 묻는 아주버님께 남편도 나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아주버님은 의사 선생님께 어머님의 현재 없는 옆구리 통증까지 있다고 말하면서 퇴원을 시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셨다. 난 속에서 불끈 뜨거운 것이 솟는 걸 참고 있었다. 계획대로 네 사람이 5시에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들어갔다. 밖에서 퇴원하는 방향으로 말씀드리자고 정리를 했었는데, 아주버님이 의사 선생님을 만나자 다시 돌변했다. 되도록이면 퇴원을 안 하게 도와달라는 식이었다. 난 그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걸 겨우 참으며, 슬쩍슬쩍 의사 선생님을 유도했다. 의료법을 설명하시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들으며(지난번에 다 들은 내용이고, 그래서 내가 모시겠다고 한 것인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니 잠깐이라도 퇴원을 하셔야지요, 라며 그 방향으로 대화를 몰고 갔다. 결론은 '어머님 퇴원'이었다. 병실에 올라와 그 쉬쉬하던 '퇴원'을 어머님께 말씀드리니, 너무 좋아서 저녁밥이 안 넘어간다고 하셨다. 이리 좋아하시는 걸 막고 또 막았던 두 사람!


어제 오후까지도 퇴원 안 시킬 거라고 간병인에게 말했다는 형님 부부, 어쨌든 우리 어머님은 밤에 진통제를 맞고 퇴원하셔서 손주들과 이야기를 나누시고, 좋아하시는 피자도 반 조각 드셨다. 거실에 나와서 나와 대화하던 조선족 간병 아주머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애들이 정말 할머니 애인이네요, 애인! 저렇게 같이 누워 재미나게 행복하게 시간 보내시는 거 보니, 내 마음이 다 기쁘다고요."


힘들었다. "어머님 소망 들어드리는 게 왜 이리도 힘들어야 했을까?"라는 내 푸념에, 그래서 더 값진 선물이었다고 남편이 말했다. 어머님이 앞으로 디시 퇴원하실 수는 있을지...


어머님의 돌발 진통 상황이 올 수 있으니, 다음날 아침에 일찍 입원하시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대비하는 진통제도 따로 받아왔다. 아직까지는 어머님 진통이 없으시다. 나는 지금 계속 기도하며 이 새벽을 지나고 있다.




어머님은 두 달 후인 2017년  6월 25일에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그날이 어머님의 마지막 소풍이 되었습니다. 병세가 악화되어 한 달 후에 다시 가자던 어머님과의 약속은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 사진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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