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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Feb 12. 2023

시어머님의 속옷을 삶으며 (2017. 2. 12 일기)

매주 주말이면 병환 중이신 시어머님을 위해 난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화분에 물을 준다. 어머님이 깨어 계실 때는 이야기를 나누고, 주무실 때는 일을 한다. 낮잠 한 번을 안 주무시던 어머님이 몸이 편찮으신 후로는 짧게 자주 주무신다.  


나는 그동안 어머님을 대신하여 많은 일을 했지만, 한 가지는 절대 못하게 하셨다. 그건 어머님의 속옷을 빠는 일이었다. 평일에 형님 댁에 계시면서 모아 놓으신 속옷을 꼭 당신 손으로 삶아 빠셨다 기운이 빠지실까 염려되어 내가 해 드리겠다고 했지만, 극구 사양하셨다.  매주 고민이 되었지만, 어머님이 지키고 싶어 하시는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판단에 어머님의 뜻에 따랐다. 그런데 어머님이 며칠 전에 넘어지셔서 엄지손가락을 네 바늘이나 꿰매신 상태였기 때문에,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바로 어머님 속옷을 빨았다. 비누 칠을 해서 삶은 후 깨끗하게 헹구어서 작은 대야에 물을 받아 그 속에 넣었다. 시어머님이 하시는 방식 그대로 했다. 그래야 비누기가 완전히 빠진다고 어머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 맑은 물속에 시원하게 놓여 있는 속옷을 보시고, 어머님도 개운하셨는지 표정이 밝으시다. 어머님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번을 시작으로 앞으로 계속해 드릴 생각이다.  





※ 아래의 사진은 어머님 화장실에 있던 빨랫비누통입니다. 병환 중인 분이셨지만, 깔끔하셨던 어머니 성격이 그대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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