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Jul 07. 2023

이별식

"형님, 오늘 출근을 해야 할까요?"

2017년 여름, 남편의 카톡에 아주버님은 출근을 하라는 답을 보내셨다. 갈등하는 남편에게 나는 출근하지 말고 어머님 병원에 일찍 가자고 했다. 토요일에 3~4일 정도 남았다고 하신 의사 선생님 말씀이 맞을 것 같았고, 조금 남아있는 어머님의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서였다.


병실에 도착하니 어머님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그런대로 숨을 얕게 쉬고 계셨고, 간병 아주머님은 어머님 상태를 체크하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해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어머님은 손을 잡고 소곤거리는 내 목소리에 아주 작은 소리로 응답하시곤 했다. '응'과 '어'가 하나로 합성된 듯한 소리였다


"어머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어머니는 대단한 분이셨어요. 어머님은 늘 지혜에게 최고라고 하셨잖아요? 어머님도 최고셨어요. 최고, 최고!"


어머님은 말씀은 못하셨지만, 조금씩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어머님의 눈물을 닦아드렸고, 볼을 만져드렸고, 어깨를 토닥토닥해 드렸다. 남편과 교대로 어머님 앞에 앉아서(돌아가시기 2주 전, 막내딸의 제안으로 작은 의자를 사다 놓았었다) 어머님과 충분한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우리 부부는 간병 아주머니께 단호박죽을 사다 드렸다. 세 달 전, 간병인 아주머니께서 어머님이 퇴원하셨을 때 우리 집에서 맛있게 드셨던 음식이었다. 밖에서 점심을 먹고 아주머니 드실 대추차를 사가지고 올라가 병실 문을 살며시 열었더니, 긴 보호자 의자에서 곤하게 주무시고 계셨다. 우리는 살금살금 병실을 나와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다시 들어갔다.

오후 네 시 정도가 되어 아주버님 부부와 퇴근한 시누님이 오셨다. 그때 아주버님께 들었다. 아침에 간호사가 들어와서 "오늘 밤을 넘기시기 어렵겠네요"라는 말을 간병인에게 슬쩍 흘리고 간 것을 형님께 보고했다는 것을. 몰랐었지만, 일찍 병원으로 향했던 우리의 선택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의사 선생님이 병실에 들어와 어머님의 상태를 살피시더니 우리 두 부부를 밖으로 불렀다.


"위 혈압이 50 정도가 되면 두 시간 정도 남으셨다고 보면 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어요"


사슴눈을 닮은 의사 선생님의 마스크 위의 큰 눈망울이 반짝 빛났다. 내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어머님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 아주버님은 아이들에게 연락을 하라고 하셨고, 비상사태임을 아는 아이들에게서는 신속한 답이 왔다. 삼 남매와 손주 일곱, 외증손주 둘을 이 세상에 남기신 어머님! 18세 어린 나이에 장애가 있는 남자와 결혼하여 무서운 세상 풍파 피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끝내 외손주 하나는 보지 못했지만, 당신이 이 세상에 남기신 인연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 편히 가시라는 말,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들을 넘치고 넘치게 많이 듣고 가셨다. 한 사람씩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드릴 때는 모두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혼연일체가 되어있었다. 이별이 슬프셨는지, 아니면 모두에게 고맙다는 표현이셨는지, 어머니는 눈물을 조금씩 계속 흘리셨고, 나는 그 눈물을 계속 닦아드리고 있었다.


어머님의 숨이 어느새 멎어있었다. 어머님은 평화롭고 고운 모습으로, 우리와의 이별식을 마치고 근심이 없는 아름다운 그곳으로 떠나셨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 많이 많이 좋아했어요. 제 고백 기억하시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