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끔 느낀다. 내게 '들어주는 사명'이 있는 건 아닐까. 특별히 아픈 가슴 이들이 자꾸 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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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연수를 가서 한 방을 쓰게 된 미모의 교사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아무에게도 못했다던 구구절절한 인생사를 들려줄 때도 난 그냥 들어주고 있었다. 연수가 끝나고 돌아와 서로 문자를 주고받고, 가끔 안부 인사를 하고, 먹을 것을 택배로 주고받기도 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10여 년이지만, 연수 이후에 지방에 살고 있던 그녀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다.
서울에서 마음치료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도 한 동생을 만났고, 이사 오기 전 다니던 미용실에서도 두 동생을 만났다. 속 이야기를 풀어내며 내게 위안을 받는 동생들이 있다. 한 동생도 그렇다. 그녀를 한 단체에서 5년 전쯤 만났고, 충분히 스쳐 지나갈 인연이었는데도 우리는 어느새 각별하게 서로를 챙기고 있었다. 걸림막 없이 속을 나누고, 서로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음을 서로의 눈빛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많은 것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고, 돌아가신 친정아버님이 가슴 아파하실 정도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종종 만나 점심을 사 주었고,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빌었다.
감사하게도 그녀의 꼬였던 일들이 하나 둘 풀어지고, 그녀의 카톡 사진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에게 대박 행운의 소식이 날아왔다. 교사 임용고시 합격! 아주 오래전에 초등 교사를 하다가 그만두었던 그녀가 다시 교사가 된 것이다. 40대의 도전은 만만치 않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드디어 금메달을 딴 것이다. 나는 기쁨의 표시로 축하 인사와 함께 땡큐 이모티콘을 세 개나 보냈다. 그녀가 얼마나 기쁜지 내가 안다. 내가 얼마나 기쁜지 그녀가 안다.
"합격하면 우리 만나요.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그 동네로 갈게요"
하지만 그녀는 오지 못했다. 그녀의 착하고 고마운 시어머님이 다리를 다치셨기 때문이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그녀가 약속을 연기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다음에 만나자고 하며 마지막에 이런 글을 보냈다.
"내가 많이 아파봐서 아는데, 편찮으신 시어머님께 잘해 드리세요 아플 때는 그렇더라고요. 잘해주면 무지 고맙고, 아니면 무지 섭섭하고."
그녀의 마음 아픈 모습만 보시다 돌아가신 하늘나라 그녀의 아버님이, 활기를 다시 회복한 딸의 모습을 보시고 많이 기뻐하실 것 같다.
♡ 사진 :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