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좀 무거워요. 토요일에 치매에 걸린 엄마에게 다녀오면 늘 이래요. 하루 이틀 지나면 또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다고 엄마께 가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아요.
결석 0, 결근 0이었던 제가, 결혼 후 힘든 시집살이를 하며 몸이 망가져 늘 아팠어요. 입원을 열여섯 번인가 했으니 심하긴 심했죠. 그때마다 제 병간호를 해 준 사람은 엄마예요. 시어머님은 제 아이들을 돌보시고, 남편은 퇴근 후 잠깐 다녀가는 식이었죠.
엄마로 살면서 알았어요. 제가 부모님께 얼마나 큰 불효를 하고 살았는지요. 자식이 아프면 마음이 아파 잠도 잘 안 오는 게 부모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몸 아픈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드리고 살았어요. 건강하고 착하고 공부 잘하는 고마운 딸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저였는데요. 그러니 아버지 돌아가신 후 너무나 죄송해서 제 차 안에서 30분 넘게 엉엉 울었던 거죠.
제가 많이 어리석었어요. 제 자식들과 제 부모님 생각은 못 했어요. 가난하고 상처 깊은 시댁을 만나, 한 많은 삶을 살아오신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 여겼으니까요. 저희 아이들은 아픈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랐고, 내색 한 번 안 하시던 부모님의 속은 어떠했을까요?
결혼식 날 아침에 미용실에 가기 전 아버지께 큰 절을 올리니, '온실 속 화초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있다'며 눈물을 흘리시던 아버지! 결혼식 비디오를 보니 아버지와 오빠 둘이 눈물을 흘리고 있더군요. 저희 엄마와 여동생은 눈물이 없는 편이었고요.
해피엔딩으로 끝난 시어머님의 깊은 사랑으로 너무나 감사하지만, 긴 시집살이의 후유증은 제 삶에 아직도 남아있어요. 저질체력으로 산다는 건 힘들더라고요. 마음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몸이 안 되는 거예요. 엄마께도 주중에 한 번 더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접었어요. 제가 제 몸을 아니까요. 엄마와 큰 오빠의 반찬을 싸가지고 남편과 함께 토요일에 가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해요.
제가 할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요. 눈이 떠지면 일어나고, 무리하지 않게 할 일을 하고, 못할 일은 거절도 하면서, 소중한 가족과 인연들을 사랑하는 하루를 보내다, 졸리면 그냥 자는 거죠.
남편이 지금 출근을 했어요. 최고라고 응원해 주었어요. 안아주고 뽀뽀도 해 주었습니다. 잘하고 올 거예요. 그쵸?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