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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Feb 21. 2023

내 삶의 가장 힘들었던 '노릇'

몇 달 전에 한 문예지에 내 동시 세 편이 실렸는데, 책이 나오자마자 전화가 왔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었다. 그곳을 떠나 이사를 하자마자 그 동네 몇 명의 아줌마들과 어울려 그 동생이 놀러 왔었고, 개인적 만남은 계속 이어왔다.


등단은 안 했지만, 글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그 동생은 내 동시가 실린 문예지를 정기구독하고 있었고, 내 작품과 사진을 보고 바로 전화를 한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바쁜 사람이었고, 나 또한 꽉 찬 스케줄이어서 겨우 한 날을 잡았다.


내가 그 동생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셋째 아이 육아휴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동네 아줌마가 되어 편하게 자주 만나고 있었다. 나는 전세로 살다가 처음으로 그 동네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이었고, 그 동생은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 아주 작은 방 두 개가 있는 집에 전세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처럼 그녀의 작은 집은 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작은 공간을 아주 예쁘게 꾸며놓았고, 깨끗하고도 참 따스했다.


나보다도 더 힘든 시댁의 며느리였던 그 동생과 나는, 아주 속 깊은 이야기를 자주 나누며 서로 위로를 받곤 했다. 내 삶의 가장 힘들었던 '며느리 노릇'은 답이 없었다. 그저 힘만 들 뿐이었다. 포기할 수도 없는 그 노릇을 잘 해내기 위해 나의 에너지는 늘 소진되곤 했다. 그 동생이 그런 말을 했다. 한 시간의 미사 시간 동안 언니는 늘 울고 있었다고. 우는 언니를 훔쳐보며 자기도 많이 울었다고.


"내 에너지가 부족하고 내 사랑이 부족했어. 그래서 울려 매달렸던 것 같아. 도와달라고, 살려 살라고."


그 이야기를 하며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고, 동생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참 힘들었던 그 시간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난 또 아팠나 보다.


시어머님이 천사로 변하신 후 10년 넘게 사랑을 넘치게 받았다. 내가 많이 아파 학교를 퇴직하고 나오던 그때, 그 원인이 당신 탓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신 건 아니었을까? 말투가 바뀌고, 눈빛이 바뀌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늘 내게 고맙다고 말하시던 어머님!  결혼해서 어머님을 만나서 놀랐던 것처럼 어머님의 온유함과 따스함에 많이 놀라며 살았다. 그리고 그 기적에 늘 감사했다.


나를 돌아본다. 17년의 동동 동동 애태우던 안쓰러운 한 여자가 보인다. 자주 상처받고 자주 가슴을 쓸어내렸던 여자! 그 바보 같은 여자는 잔머리를 굴릴 줄 몰랐다. 돈을 드릴 때도 그랬고, 어머님 보시기에 어설픈 행동일지라도 내 마음을 100% 다 드렸었다.  긴 시간 내가 한 일은 '내 마음을 온전히 다 드린 거' 그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캄캄하기만 했던 방의 두꺼운 커튼을 걷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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