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워 가출을 결심한 적이 있었다. 우리 친정 부모님께서 아시면 기절할 노릇이었겠지만.
퇴근 후, 학교에서 제일 친했던 선생님댁에 가서 저녁을 얻어먹고 과일까지 먹고 나서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선생님 꺼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다. 그 선생님은 그 당시에는 보기 드문 이혼녀였는데, 아기도 없이 혼자 살고 계셨다. 꽤 지적이고 좋은 성품을 가진 분이셨는데, 매우 독선적인 남편과 몇 년을 살다가 일찍 결혼생활을 포기한 분이셨다.
"선생님, 저 오늘 집에 안 들어갈래요. 하루하루가 지옥이에요. 제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한 번은 보여주고 싶어요."
결혼 전의 내 발랄했던 모습과 소녀다운 감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던 선생님은,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빼빼 말라가며(41킬로)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매우 안타깝게 지켜보시던 분이셨다. 9시가 되자 선생님은 내 가방을 들고 내 손을 잡고 무작정 나를 끌고 나갔다. 그리고 택시를 태워 나를 집으로 보내며 말씀하셨다.
"채 선생, 나 다 알아. 내가 왜 몰라. 마음도 여리고 착한 사람이 오죽했으면 가출한다는 말을 내게 했겠어. 나도 오늘 우리 집에서 채 선생을 재우고 싶어. 하지만 이건 아니야. 이 사건은 두고두고 채 선생 발목을 잡고 괴롭히게 될 거야. 그러니 그냥 집으로 들어가."
난 그 당시 그 선생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 많이 섭섭했지만, 그 선택이 얼마나 값있는 것이었는지 두고두고 깨닫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꼭 연락하게 되는, 지금은 멀리 하늘나라에 계시는 그 선생님 같은 분들이 내 인생에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던 인연들! 그 덕에 힘듦 속에서도 큰 위로를 받으며 그렇게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다. 마침내는 시어머님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 상처들은 기적처럼 다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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