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흘러갑니다

by 채수아

학교에서 몇 년 동안 자매처럼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하기 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분이지요. 힘든 이야기를 아무 데서나 툴툴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저는, 아주 친한 몇 사람에게만 비밀스럽게 속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신혼 초였던 제가 그 당시 힘들어했던 부분은 시집살이에 적응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사의 딸로 자랐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해도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던 저! 장애를 가지고 계셨던 시아버님을 대신해서 삼 남매를 책임지고 사셔야 했던 시어머님, 그리고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댁! 저는 마음만 급했지, '시댁'이라는 곳에 적응하는데 꽤 힘들었지요.


결혼 시작부터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던 제가 어머님께 들은 첫 상처는, 제 신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신발장에서 제 신발과 구두를 보신 시어머님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세상에~ 너 신발장사 해도 되겠다."


여름 샌들과 겨울 부츠를 합해 구두가 열 켤레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시어머님 눈에 저는 아주 사치스러운 여자로 보였었나 봅니다. 저는 순간 굉장히 당황하며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큰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또 하나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결혼을 할 때 친정엄마가 사주신 행남 자기 접시에 반찬을 예쁘게 담아놓으면, 시어머님은 그게 못마땅하셨는지 바로 손바닥만 한 작은 접시에 옮겨 담으셨지요. 그런 일이 몇 번 반복이 되자, 저는 시어머님이 계실 때는 아예 작은 접시에 반찬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상을 차려놓으면 늘 소박하고 가난해 보이는 밥상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시댁 모임에 갈 때는 가장 수수한 차림으로 옷을 입으며, 저도 모르게 '가난한 집에 어울리는 며느리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 하나하나가 제 딴에는 '적응'이었겠지만, 제 마음속에는 어떤 스트레스로 작용했나 봅니다 저는 친했던 그 선생님에게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풀고 살았습니다. 물론 친정 부모님께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교장 선생님으로 계시는 그 학교의 한 선생님과 마주칠 일이 있었는데, 저를 보자마자 측은한 눈빛으로 제 손을 꼭 잡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채 선생~ 시집가서 마음고생이 크다며? 에고~ 어떻게 해"


저는 망치로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전임교에서 저와 같이 근무를 했었고, 그다음에는 제 절친이었던 그 선생님과 한 학교에서 근무를 하며 친하게 지내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으로 그분은 말이 많고, 입이 가벼운 분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를 끔찍이도 아껴주셨던 아버지가 마음 아파하시는 걸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을 말하며 위로받으며 살았었는데, 그리고 그 비밀을 지켜줄 거라 믿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일이 그렇게 흘러가더군요. 아버지께서 그 사실을 들으셨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어쨌든 그 이후 그 선생님에게 제 고민을 털어놓는 일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제가 사랑했던 아버지도, 제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어머님도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사랑해 주신 아버지도 제 그리움이고, 뒤늦게 저를 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신 어머님도 제 그리움입니다.


제가 많이 아팠듯 몸 아픈 사람도 많고, 마음 아픈 사람도 많더군요. 제게 다가온 그들과 오늘도 함께할 겁니다. 서로 애썼다고 말해주고, 남은 날들 잘 살아보자고 말할 겁니다.


또 새날입니다.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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