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펌프질을 할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위에서 붓는 물'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뜻도 좋지만 입에서 오물거리는 어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우리말은 '두름길'이다. 어릴 때부터 자주 사용하던 '지름길'이라는 말의 반대어인 '두름길'이라는 단어를, 동화 작가 김병규 선생님의 책 서문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둘러서 가는 길'이라는 뜻의 '두름길'을 발음할 때마다 거기에서 정겨운 새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졸졸 샘물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언어'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우리말'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는데, 특히 이 두 단어를 굉장히 좋아한다. 나는 이 중에서 '마중물'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려한다.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도, 문학활동을 할 때도, 어느 모임에서건 늘 마중물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껄끄러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조직이 잘 굴러가도록 애쓰는 사람, 그 한 사람의 말투와 솔선수범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고운 물을 들여 어느새 우리는 하나가 되어 좋은 시간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서는 꽃향기보다 더 아름다운 향기가 났다. 그 사람에 앞에 서면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곤 했다.
내가 최근에 만난 '마중물'은 우리 동네 할머님이시다. 아침 운동을 하며 나는 그 할머니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허리 보호대를 하고 다니시는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우리 동네 아침 운동팀' 이야기는 참으로 재미있었다.
할머니께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신 지는 10년이 넘으셨고, 늘 습관대로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오셨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 동네와 달리 아파트 대단지의 할머니들은 각자 자기 운동하기 바빠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이런 분위기니 스스로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오랜 시간 그렇게 아침 운동을 하셨는데, 늘 쓸쓸한 마음이 있었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딸이 사는 아파트 한 단지로 이사를 오신 한 할머니가, 운동하는 할머니들께 먹을 것을 챙겨 나눠주시며 할머니들을 벤치에 모이게 하셨다고 한다. 나도 그분께 아삭아삭한 오이를 건네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분은 내게 밭에서 따오신 예쁜 가지도 갖다주셨다. 나도 시간 되시는 할머님들 몇 분에게 설렁탕을 사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우리 모두를 당신 집으로 가자고 하시어 냉커피와 고구마와 옥수수를 대접해 주셨다. 나오는 길에 내 손에는 겉절이 김치통이 들려있었다. 그분이 작년 가을 우리 아파트로 이사를 오시면서 자연스럽게 할머님들이 친하게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새벽 운동을 시작하면서, 대단지 아파트 할머님들의 따스한 분위기가 신기하고 감사했었는데, 거기에는 한 분의 '마중물'이 계셨던 것이다.
내가 지켜본 한 달이지만, 그분의 인생을 떠올려본다 늘 남에게 관심을 갖고, 뭔가를 주려고 애쓰시는 모습,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그분의 진심, 그리고 풍겨지는 아름다운 향기! 서울에서 살다가, 시아주버님이 돌아가신 후에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라'는 시어머님의 엄명에 시골에 내려가 그 많은 농사를 지으시며 시부모님을 챙기고 사셨던 그분의 삶! 그분의 존재로 주변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