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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ul 10. 2023

100% 나의 선택이었음을

둘째 아이 육아 휴직을 끝내고 학교에 복귀했다. 바쁜 신학기 초에 과학실로 모두 모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연구, 연수’를 담당하는 여교사가 젊은 층의 우리 교사들에게 ‘학교 대표 수업’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무리에는 작년에 본인이 대표 수업을 힘들게 했으니, 이번에는 다른 분이 꼭 수업을 해 주십사, 하는 부탁의 말을 했다. 학교 수업에 그 많은 업무에, 전문 심사위원들 앞에서 부담스러운 수업을 하겠다는 교사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말했다. 본인은 어린 자녀가 둘이 있고, 이번에는 절대 수업을 맡고 싶지 않으니, 제발 어느 한 분이 수업을 꼭 맡아달라고 애원을 했다.

집에 돌아왔다. 자꾸 그 생각이 났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안 하면 그녀가 다시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그래,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자.’ 가끔 무식하게 용감한 나는 그다음 날 학교에 가서 내가 하겠다고 신청을 했다.


시간이 흘러 2학기가 시작되었다. 과목은 내가 좋아하는 국어로 정했고, ‘글쓰기 지도에 대한 연구록’은 꾸준히 준비를 해 온 상태였다. 이제 남은 한 달 열심히 수업 준비만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그때 우리 반 현정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 새벽 미사였다.


한 달이 바쁘게 흘러갔다. 수업 준비는 만족하게 잘 되어갔고, 심사위원에게 제출한 ‘지도안과 연구록’이 마음에 쏙 들게 책자로 나왔다. 이제 3일 후면 ‘대표 수업 일’이고, 다 잘 될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쓰러진 것이다. 혈압이 40으로 떨어진 상태로. 나는 근처의 병원에 3주 동안 입원을 했다. 퇴원할 무렵, 원장님께 소견서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다.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고 비장이 심하게 부어있어 백혈병이 의심된다는 말과 함께.


며칠 후 나는 여의도 성모병원 무균실에 입원을 했고, 그 아픈 척수 검사와 모든 종합 검사를 받았다. 나는 일주일 후에 백혈병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아 퇴원을 했고. 거기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몇 개월 안에 이 세상을 떠났다. 죽음이 그렇게 쉽게 다가올 수 있다니 놀라웠다.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로 돌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해 주고 기도해 준 감사함을 느끼고 있을 즈음,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학교 대표 수업에 대해 설명을 하던 그녀, 내가 아팠을 때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던 그녀, 학교에 돌아가서도 내게 별 관심이 없던 그녀! 난 어느새 그녀를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녀의 짐을 대신 진 것이라는 착각을 했던 것도 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나는 그녀를 잊었다. 어느 날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오랜 전의 그녀를 향한 내 원망은 옳지 않았음을, 그 모든 것은 100% 나의 선택이었음을, 또한 그와 비슷한 모든 일들에 대해서도 내 책임이라는 것까지. 그것을 깨달은 그 순간, 나는 꽤 많이 키가 커진 느낌이었다.



제자 현정이는 그 이후 백혈병 완치 판정을 받았고, 그 이후 경희대 수시 합격을 했다는 전화를 제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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