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의 글씨가 그립다

by 채수아

이거 하나가 남아있다. 돌아가신 시어머님 글씨! 몰랐었다. 얼마 전에 장례식장에 가면서 부의 봉투를 찾다가 발견한 어머님의 봉투 하나! 항상 글씨 없는 봉투에 10만 원을 넣어서 내 생일에 주시곤 했는데, 내게 이렇게 남기시려고 어느 해에 하나 쓰신 거였나 보다.


어머님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하셨다. 너무나 가난하여 학교는 꿈도 꾸지 못하고, 바느질과 길쌈과 살림을 배우다가 열여덟 살 어린 나이에 이웃 동네에 사는 두 살 더 많은 총각에게 시집을 갔다. 어머님은 학력은 없으셨으나 늘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으로 평생을 사셨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주소만 알면 어디든지 찾아갈 자신이 있는 분이셨다. TV도 유익한 방송을 골라서 보셨다. 물론 드라마도 좋아하셨지만. 어머님이 꼭 찾아보시는 방송이 '우리말 퀴즈'프로그램이셨다. 말기 암 환자로 병원에 누워계시면서도 그 방송을 보며 웃으시던 어머님이셨다.


​어머님 집이 팔려 집 정리를 하러 모인 날, 내 눈은 거실 TV 옆에 있던 어머님 수첩을 찾고 있었다. 비뚤비뚤한 글씨로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던 어머니의 수첩! 많은 부분에 우리 막내딸 글씨도 보였다. 아마 새로 정리를 한 수첩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흐릿한 어머님 글씨 옆에 네임펜으로 크게 다시 써 드린 적이 있다. 그 수첩이 가장 갖고 싶은 어머니 유품이었다. 그날 그 수첩은 보이지 않았고, 나중에 시누님께 여쭤보니 아마도 엄마가 병원에 입원할 때 갖고 들어가셨을 거라고 했다. 어머님이 늘 갖고 다니시던 큼직한 가방(초등생 신발주머니 모양) 안에 들어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 가방에는 병문안 온 지인들이 와서 준 돈 봉투와 어머님이 입원할 때 미리 찾아놓은 현금도 같이 들어있다고 했다. 그 가방은? 그 가방은 어느 박스에 들어가 있었는데, 나중에 같이 살펴보자는 말을 큰며느리에게 들었다고, 그런데 어머님 돌아가신 그 순간에 큰며느리는 자기 둘째 아들에게 그 박스를 남편 차에 넣어두고 오라고 하는 말을 병실에서 들었다고도 했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묻힌 채 덮여졌다. 슬금슬금 돈 욕심을 내던 행동들이 간병인 입을 통해서, 시누님이 알고 있던 사실들에, 그리고 우리가 직접 겪었던 추한 행동들까지. 하지만 우리 세 사람은 덮었다. 그걸 밝히고는 어머님 장례식을 온전히 치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례식에서 발생한 문제들까지 덮은 이유는, 그 치졸한 행동들을 밝히고는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절친은 말했다. 다 밝히고, 할 말 다 하라고, 인연이 끝이 난다고 해도. 하지만 난 아니라고 했다. 싸움도 싸울만한 사람과 싸우는 거라고. 그동안 형님의 모습은, 자기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우며 마무리를 하는 식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님을 죽어도 못 모시니 도련님이 모시라고 했던 말도, 내 남편이 지어낸 말이라고 흥분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식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세 사람의 신혼 생활이,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다. 길고 길었던 그 세월! 그래서 남편은 형수에게 별명을 지어주었다. 사이코패스! 물론 본인은 모른다. 항상 웃고, 항상 친절하고, 항상 다정한 눈빛과 말투와 손놀림!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유형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은, 어쩌면 남편인 아주버님까지도 오래전부터 그녀를 '포기'하고 살았을지 모른다.


방송에서 오나미가 눈물지으며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 지갑에 들어있던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고. 그 말을 들으며 나도 울었다. 그리고, 그리고, 잠수를 타고 있는 형님네에 전화를 해서 어머님 수첩을 찾고 싶다고 말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어머님이 항상 갖고 다니시던 수첩이 그냥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건 너무한 일이 아닌가!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6년이 넘었다. 그 수첩이 그 집에 있기는 할까?.... 나쁜 사람.... 참 나쁜 사람이다. 어머님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앞으로는 명절이나 제사를 각자 따로 지내자고 말했던 형님은 지금 많이 행복할까? 그녀는 지금도 활짝 웃으며, 따스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대하며 살 것이다. 어머님이 만드신 우리 애들 통장을, 찾지도 못할 걸 알면서도 몰래 사진 봉투에 넣어 빼돌리다가 봉투가 바뀌어 시누님께 걸린 사람이다. 그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넓은 세상에 인연으로 다가온 사람들과 사랑하며 잘 지내야 하지만, 때로는 그게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음을 받아들인다. 다 나름의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 것이다. 어디에서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담담히 살아간다. 얼마나 감사한 하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