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버님이 많이 아프시다. 어머님 말기 암 진단에 가장 마음 아프셨을 분이 아마도 아주버님이 아닐까 싶다.
우리 시어머님은 삼 남매를 두셨지만, 유독 큰아들에게 정성을 많이 쏟으셨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남편은 평생 어머님의 한이 되고 울화가 되었지만, 어머님이 처음 이 세상에 내놓은 아들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눈에 띄게 잘 생겨 어머님의 큰 희망이 되었다. 김을 자르면 가운데의 가장 예쁜 부분을 큰아들에게 따로 주었고, 방을 두 칸으로 옮겼을 때도 따로 방 하나를 줄 정도로 큰아들에 대한 편애가 심했다는 말을 시누님께 들었다. 가난했지만 가난한 티가 안 나게 자식을 키우셨던 어머니는, '부티 나게 삼 남매가 잘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들으셨다고 내게 자랑하곤 하셨다. 나도 아주버님을 처음 뵈었을 때 귀공자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아주버님은 시골에서 공부를 잘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수원에 올라와서도 계속 공부를 잘했지만, 가족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대기업에 취직을 하셨다. 그리고 일을 워낙 눈에 띄게 잘하셔서 나중에는 부장까지 승진하셨다. 퇴임 1년을 앞두고, 회사와 거래하는 중국 회사의 회장님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부사장으로 가셨다가 1년 후 바로 사장으로 진급하셨다. 난 아주버님이 자랑스러웠고 시아버님이 며느리 사랑하듯 나를 아껴주시는 아주버님이 늘 감사했다.
시어머님을 처음부터 모시고 살았던 내게 아주버님은 당신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셨다. 우리 삼 남매에게도 각별하게 신경을 써 주셨다. 그런 아주버님이 계셨기에 내 힘든 시집살이가 조금은 덜 힘들었을지 모른다.
어머님 직장 말기 암 진단 후, 매주 평일 아주버님 댁에서 4일을 계시는 동안 어머님의 모든 것을 꼼꼼히 챙기시고, 밤에도 화장실에 자주 가시는 어머님 걱정에 잠을 계속 설치다 보니 두통이 심해지셨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고, 가끔은 술을 드신다고 형님이 내게 전하셨다. 아주버님 몸이 점점 상하시고 지쳐가니, 부부는 요양병원과 대학병원 호스피스 병동까지 찾아가 상담을 하고 왔다고 어제 어머님 병원의 카페에서 내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어머님이 지금 입원해 계시는 병원이 마음에 들고 주치의도 자상하니 이 병원에서 어머님이 입원해 계시다가 돌아가시면 거기서 장례식을 치를 계획을 갖고 있다는 말씀까지 들었다. 요즘 내 몸이 바닥을 쳐서 거의 매일 링거주사를 맞고 어머님 병원을 가고 있으니, 나는 두 분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주말 이틀을 어머님과 함께 어머님 댁에서 보낸 지 6개월이 지났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우리 부부도 거의 몸살 약을 먹으며 버텨왔는데, 아주버님과 형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나마 건강하신 분은 우리 형님이다. 어머님 식사 준비 이외에는 교회 활동을 예전과 변함없이 하고 계시니 바쁘신 가운데도 스트레스를 덜 받으시고 씩씩하게 잘 버티고 계시는데, 2년 전에 몸이 안 좋아 스스로 퇴직을 하시고(통풍도 심하셨고 몸도 점점 안 좋아지시니 회장님이 말리시는 걸 뿌리치고 오셨다) 한국으로 돌아오신 아주버님은, 통풍은 나으셨지만, 어머님 모시면서 굉장히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몸이 급속도로 나빠지시니 요양병원까지 알아보셨던 것 같다.
어제 링거주사를 한 대 맞고, 낮에 어머님께 다녀온 나는 퇴근한 남편과 학원에 안 가는 날인 고3 막내딸과 함께 저녁에 또 어머님을 뵈러 갔다. 8시가 조금 넘었는데, 방의 불이 꺼져 있었다. 어젯밤 화장실에 자주 가시면서 잠을 거의 못 주무신 어머님과 같이 밤을 새웠던 간병인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찍 불을 끄고 누우신 것 같았다. 우리는 아주 잠깐 어머님을 뵙고 나왔다. 오는 길에,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도 낮에 들었던 아주버님과 형님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하니 남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봄과 여름 사이'를 믿고 있는 듯한 형님 부부와 그보다는 훨씬 더 오래 사실 거라고 믿는 우리 부부.
퇴원하실 날을 은근히 기다리시는 어머니, 아직은 병원 치료가 좀 더 필요한 어머니, 퇴원해도 괜찮을 시기가 되면 내가 링거주사를 맞으면서라도 우리 집으로 모셔와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나, 옆에서 한숨 쉬며 도리질을 하고 있는 남편.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후~~~
※ 어머님은 그해 6월에 소천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