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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Nov 24. 2023

복을 끌어당기는 여자

나는 세 아이를 낳았는데, 둘째와 셋째 아이 때는 육아휴직을 했었다. 휴직 기간 중, 늘 학부모로 거리감 있게 느껴졌던 '아이 엄마들'과 언니, 동생 관계로 살아간다는 게 좀 신기하기도 했다. 매일 아침 화장을 곱게 하고 출근을 하던 워킹맘이, 내 집 현관문을 오픈하고, 서로 음식을 나누고, 수다까지 떠는 모습이 그녀들에게도 신기했을 것이다. 내 인생의 특별했던, 인생 공부 또한 많이 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고 난 후에 어느 한 집에 모여서 모닝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말이 길어지면 점심을 함께 먹기도 했다. 함께 노래방도 갔었고, 시장을 같이 보기도 했다. 학구가 아니어서 더 편했을 수도 있었다. 그녀들과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을 만나 연애했던 이야기, 학창 시절, 시댁 이야기, 부부 싸움 이야기 등등, 교사들과 나눌 수 없었던 툭 터진 아줌마 스타일의 편안한 이야기들이 나는 참 좋았다. 얼마나 내가 편하고 만만했는지 "언니, 나 어디 좀 갔다 올게. 우리 아기 좀 봐주라." 하던 동생도 있었다. 우리 아기와 그 집 아기, 둘을 보기에는 체력이 약해 몸살이 난 적도 있었는데 그녀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녀, 아줌마들은 천하무적 씩씩했고, 용감했고, 가리는 것이 없었다. 뭔가 당당했고, 억척스러웠다. 나의 성향과는 많이 달랐지만, 나는 그녀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살림에 대해, 음식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중 내가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한 엄마가 있었다. 남편도, 아주버님 부부도 다 알아주는 명문대를 나왔지만,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당당히 말하던 여자! 나이트클럽에서 남편을 만나서 결혼까지 했다는 여자! 우리가 음식점에서만 사 먹는 그런 음식까지도 척척 만들 줄 알았던 여자!  아무 때나 방문을 해도 정리 정돈이 잘 되어있던 그녀의 집! 새댁임에도 불구하고, 복날에는 삼계탕을, 오곡밥을 먹는 날에는 나물까지 기가 막히게 만들었던 여자! 난 그녀에게 국물 진한 삼계탕과 밥도둑인 미더덕찜을 배웠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감히 따라 할 수 없었던 그녀의 집안 정리 정돈법을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흉내를 내고 있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 물건이 잘 정돈된 집, 장롱문을 열어 자주 환기를 시키고, 창고 문까지 가끔 열어놓는 모습!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그녀의 화사함이었다. 밝은 에너지의 소유자! 그녀와 그녀의 집에서 내가 느낀 건, 뭔가 복이 막 들어올 것 같고, 복이 그 집에 들어오면 오래 머물고 싶을 것 같았다.


그녀의 남편은 회사 생활도 탄탄대로로 잘해나갔고, 아이들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장난꾸러기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 후 연락이 끊겨서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지만, 난 여전히 그녀의 집안은 술술 잘 풀리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녀는 오늘 아침에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서 가족을 먹일 것이다. 요즘의  내 모습처럼 말이다. 음식을 만들 때 가장 환한 얼굴을 하셨던,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시어머님을 떠올리게 되는 새벽이다. 음식은 사랑이다. 사랑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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