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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Dec 25. 2023

그리운 ㅇㅇㅇ 선생님께

선생님!

보낼 분들께 성탄 선물을 카톡으로 다 보낸 후였어요. 명상 중에 갑자기 선생님 생각이 나서 카톡을 찾아보니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전화번호 검색을 하니 이름이 두 개 뜨더군요. 그냥 첫 번째를 누르고 보니 시골집 전화번호였습니다. 내가 언제 집 전화번호를 저장했나 갸우뚱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닌 다른 분이 받으시더군요.


"거기 000 선생님 댁 아닌가요? 제가 잘못 걸었나요?"


제 버벅거리는 질문에 그 여자분은, 맞기는 한데, 멀리 떠났다고 담담히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본인은 함께 살던 언니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왜 갑자기 떠나신 거냐고 묻자, 언니는 그제서야 암이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시골로 내려가 계시다는 말씀을 듣고, 보통 교사들이 하는 명예퇴직을 하신 줄만 알았습니다. 언니 말씀을 들으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학교를 정리하고 언니 집으로 내려온 거라고 하시더군요. 전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네요.


몇 년 사이에 제 발목 골절로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좀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선생님께 전화 못 드린 그 몇 년 동안, 선생님은 하늘나라에 가 계셨던 거였네요. 아드님 안부를 물으니, 선생님 돌아가신 후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가슴 아파하셨던 하나뿐인 그 아들의 결혼식도 보지 못하고 그리 빨리 떠나셨네요.


선생님이 저희 학교로 전근을 오실 때 '이혼녀'라는 꼬리표가 따라왔습니다. 30여 년 전 그 당시에는 주변에 이혼한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고, 이혼한 교사는 선생님이 처음이었어요. 교사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저는 선생님의 눈빛과 말투에서 선함과 이지적인 면을 발견하고, 제가 먼저 선생님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발랄하던 처녀 시절의 모습,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생겼다고 남편을 소개하던 열애에 빠진 모습,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힘들어하던 그 모습을 다 지켜보시며, 늘 안쓰러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셨지요.

어느 날 퇴근길에 선생님을 따라 선생님이 사시는 아파트에 놀러 갔었어요. 집에 시어머님이 계시고, 어린아이가 있는 워킹맘 입에서 "선생님, 나 집에 가기 싫어요. 여기서 자면 안 돼요?"라는 소리를 듣고 선생님은 눈이 휘둥그레지셨지요. 그런 말을 절대 하지 않을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니 더 그러셨겠지요.


"채 선생, 나는 우리 집에서 백 번도 재워줄 수 있어. 그런데 힘들다고 가출을 하고 나면 그 뒷감당을 어쩌려고 그래? 애쓰고 산 건 다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계속 그걸로 발목이 잡히게 될 거야."


우는 아이 달래듯이 선생님은 제게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려서 먹이신 후에 차까지 대접한 후, 제 가방을 챙기고 손을 잡고 나와, 택시를 잡아서 택시 기사님께 택시비를 주셨지요. 그래서 저는 그날 가출에 실패했습니다.


며칠 전에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추억의 커피잔을 발견했어요. 선생님이 저희 집에 놀러 오셔서 제가 그 커피잔에 커피를 타 드렸잖아요. 남편이 다니던 회사의 친한 박사님이 영국 출장을 다녀오시면서 사다 주신 부부 잔 세트였어요. 선생님은 모르시지만, 그 비싼 커피잔에 커피를 탔다고 선생님이 가신 후에 어머님께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 이후 전 그 커피잔에 커피를 마신 적이 없고, 손님 접대에 사용한 적이 없어요. 어머님 또한 그러셨고요.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 그릇 정리를 하다가 알았지요. 커피잔이 깨진 건지 받침만 두 개 남아있다는 것을요. 선물 받은 지 삼십 년이 지난 후, 우연히 같은 커피잔을 발견하고 선생님을 떠올렸는데, 혹시라도 이게 선생님의 죽음을 미리 알려준 메시지였을까요? 더군다나 어제는 구입한 후에 그 커피잔에 커피를 처음 마신 날이었거든요.

선생님!

이 땅에서의 삶, 많이 외로우셨죠? 재혼도 안 하시고 평생을 외롭게 사시다가, 고향 땅에 묻히신 선생님을 언젠가 꼭 찾아뵙겠습니다. 어제 언니와 통화 후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주소를 여쭙고 가장 좋은 배 한 상자와 한우 선물세트를 주문했습니다. 선생님 마지막을 지켜주신 언니와 형부께 무엇이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지요. 받는 사람에는 '000 선생님 언니께'라고 썼습니다.


선생님!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그곳에서는 외롭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받은 사랑이 많았음에도 다 돌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 삶에서 선생님은 정말 큰 힘이 되어주신 분이셨어요. 제 등단 소식에 저보다 더 기뻐하셨던 선생님, 글 다운 글 쓰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사진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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