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Feb 01. 2024

내가 포기한 것 하나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의 어느 날, 시어머님이 뻥튀기 두 봉지와 조그맣게 자른 감을 꿀물에 담근 병 하나를 들고 오셨다.


"어머니, 추우신데 어떻게 오셨어요?"


난 어머님이 들고 계신 보따리를 받아 들고 활짝 웃으며 반겼다. 어머니께 이것저것 먹을 것을 가져다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하 호호 웃으며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가시기 전에는 늘, 우리 집에 있는 것들을 머릿속으로 스캔한 후 싸 드릴 수 있는 것들을 골라 어머님 보따리에 넣어드렸다. 그날은 맛있는 섬초 한단, 맛있는 황태 반 봉지,  정말 맛있는 과자 한 봉지였다. 마치 소꿉장난을 하듯이 말이다. 딸들이 내 모습을 보고 웃었다. 행복하게 웃었다.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


오래전, 나는 정말 큰 용기를 내어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다.


"어머니,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시면 제가 좀 힘이 들 때가 있어요. 특히 몸이 아플 때는 잘해 드리지 못해서 가시고 나면 굉장히 속상해요. 오시기 전에 전화 한 통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어머니는 그다음에 세 번 정도 전화를 하고 집에 오셨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난 그때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 내가 포기하기로 했다. 평생 미리 연락을 안 하고 다니시는 어머니한테 (어머니는 언젠가 서울에도 연락을 안 하고 가셔서 주인이 없어 돌아오실 때도 있었다) 그건 정말 고치기 힘든 습관일지 모른다고, 그리고 평생 고생하신 그분께 그만한 자격 하나쯤은 있어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내가 포기하니 편하더라는 것이다. 몸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드리고 지나치게 잘하려고 애쓰지 않고, 집안이 지저분하면  어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슬금슬금 치우기도 했다.  


살면서 내가 스스로에게 칭찬하는 몇 가지가 있다.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아이 셋을 낳았던 것 (나는 결혼 전, 아이 넷의 엄마가 되는 목표를 세워 남편을 놀라게 했었다 ㅎㅎ 왜냐하면 결혼 전에도 학교 아이들이 너무 예뻤으니까) 그리고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오늘 아침 글 쓰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포기를 제대로 잘했다고, 정말 잘했다고.

이전 22화 내 친구 혜숙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