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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Feb 04. 2024

공포의 받아쓰기

새 학년을 맡으면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아동에 대해 전 담임으로부터 조언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중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한 아이가 떠오른다.


"선생님, 이 아이 화가 나면 굉장히 무서워요. 작년에 야단을 쳤더니 의자를 집어던지더라고요."


그렇게 심한 아이는 본 적이 없어 걱정이 많이 되었다. 첫날, 이름을 부르며 그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피부는 하얗고 눈이 크고 예쁜 남자아이였다. 웃음기가 없었고,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며칠 그 아이를 지켜보았지만, 특별히 친구를 괴롭히는 일도 없고 수업 시간에도 집중하는 편이라 내심 안심하고 있었는데, 급기야 일이 터지고 말았다. 받아쓰기 시험을 본 후 공책을 나눠주는데, 하나 틀린 점수를 보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다음에 더 잘 보면 되지 않겠느냐, 90 점도 잘한 건데, 왜 그렇게 우나며 달랬다. 그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자기는 집에 가면 죽는다고, 아빠한테 많이 맞는다고.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아이의 문제가 여기에 있었구나! 아이를 달래며 마음이 몹시 쓰렸다.


그 일을 겪은 후, 이 아이가 내 책상 근처로 와서 내게 말을 시켰다. 우리 반 아이들은 늘 쉬는 시간에 내 책상을 둘러싸고 모여들곤 했다. 해가 바뀌어도 익숙한 우리 반의 풍경이었으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어느 대학교 나오셨어요? 우리 아빠는  00 대학교 나오셨어요. 대단하죠?"


그 아이를 맡았던 게 30 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그 '00 대학교'를 기억하고 있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명문대로 불리는 그 학교 이름이 참 슬퍼 보였다. 그 아이와 함께 지냈던 일 년 동안, 의자를 집어던지는 일은 없었지만, 순간순간 놀랄 일이 많이 있었고, 안 좋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무조건 큰 소리로 우는 때가 종종 있었다. 워킹맘이었던 아이의 엄마와는 종종 이메일 상담을 했고, 그 엄마도 남편의 과격한 행동을 인정하고 안타까워했다.


평소에는 잘해 주다가도 시험 성적에 있어서만은 무섭게 야단을 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던 그 아빠, 그도 그의 부모님께 그런 방식으로 양육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내가 가르쳤던 그 아이가 자라 그 아이의 아빠처럼 명문대에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뉴스에 나오는 아동학대 사건을 지켜볼 때면 난 늘 그 아이가 떠오른다. 지금은 마흔을 넘은 나이일 테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있을 수도 있을 텐데, 그 아이도 자기의 아빠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모든 것의 기본은 가정이고, 따뜻한 부모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만 아이가 사랑을 배울 수 있다. 그 밑거름으로 남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교사 생활을 하면서 그 중요한 기본이 깨어진 가정이 많아 마음이 아플 때가 있었다. 두려운 눈빛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만날 때 특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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