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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Feb 06. 2024

여자의 일생

2017.2.4일 일기

어머님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어머님을 절대 모시지 않겠다고, 결혼도 안 한 시동생에게 어머님을 부탁했던 형님이, 어머님 말기 암 판정 후 아주버님이 댁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가자, 처음으로 입원 전 몇 달 동안 어머님을 일주일에 며칠씩 모셨다. 주말은 우리, 월요일과 화요일은 시누님이 어머님 댁으로 와서 돌보셨다. 교회 활동으로 바쁜 아내 대신 아주버님이 어머님을 보살피다 너무 힘이 드니 분담을 요청하신 거였다  형님은 금요일 철야 기도를 하고 새벽에 들아 오시기 때문에 토요일 오전에 어머님을 모시러 가면 늘 아주버님이 어머님을 모시고 내려왔다.


● 여자의 일생 (2017.2.4. 아침 글)


오늘은 토요일, 어머님을 모시러 형님 댁에 간다.  주말만이라도 당신 집에서 편히 쉬고 싶어 하신 어머님 뜻에 맞춰 우리가 어머님 댁에서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전에 출발해야 하기에, 어제 미리 미역국과 김치된장지짐과 반찬 한 가지를  만들어 놓았다. 아침에 반찬 몇 가지를 더 만들어 형님 댁으로 떠날 것이다.


어제는 마음의 고통이 심한 아주버님과 남편이 만나 술을 마셨다. 밤 10시 정도에 집에 돌아온 남편은 많이 슬퍼 보였다. 나와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뒤에 남편은 이내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가 한 마지막 말은, 초등학생 때 구정 전날 새벽 세 시 정도에 어머님과 함께 칼바람을 맞으며 꽁꽁 언 땅을 밟으며 '복조리'를 집집마다 던지던 기억이었다. 그날의 추위를 그는 평생 잊지 못했다. 어린 아기 때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시던 어머님이, 물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일을 하시다 깜짝 놀라 아기에게 달려갔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남편은 '섬집 아기'라는 노래를 가슴 아프게 좋아한다.


오늘 새벽 눈을 뜨는데, 젊은 시절 시어머님이 떠올라 마음이 저릿했다. 가장 역할을 못 하는 몸이 성치 않은 남편과 세 아이를 책임져야 했던 하루하루가 견디기 어려워, 까만 밤 어머니는 동네 물가를 서성이며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셨다고 했다. 물이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내게 담담히 말씀하셨던 어머니!


어머님의 고통으로 온 가족이 아파한다. 가족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그분을 우리도 포기하지 않는다 병 중에 외롭지 않으시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고통을 이겨내실 수 있도록 모두 힘을 모아 어머니를 지키고 있다.


강인함과 가시를 함께 갖고 계셨던 어머님을 뵈며 시비분별한 적이 많았다. 나는 오래 모시고 살았기에 그 가시에 더 많이 찔렸을 것이다.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말투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분가 후 당신 인생을 돌아보신 후, 인생의 승리자답게 따스하고 온유한 노인으로 당신을 아름답게 만들어가셨다. 여든다섯, 그 길었던 삶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었던 한숨과 눈물과 한이, 어머니 가슴에서 깨끗이 지워지길, 그래서 하늘나라 가시는 그 길이 깃털처럼 가벼우시길.


몇 달 후에 어머님은 내 간절한 소망대로 매우 고운 모습으로, 자식과 며느리와 손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랑한다는 그 많은 고백을 받으시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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