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에 대한 묵상

by 채수아

시어머님이 이 세상을 떠나신 마지막 순간의 모습은 굉장히 아름다우셨다. 자식들과 며느리들과 손주들의 '사랑한다'는 고백을 수없이 많이 들으시며 어머님은 천국으로 떠나셨으리라. 돌아가실 시간을 미리 예측하여 알려주셨던 우리 의사 선생님께 난 지금도 감사한다. 부모의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와준 내 자식들과 조카들에게도 감사한다. 내가 이마트에서 사다 놓은 작은 플라스틱 의자(병중의 어머님과 오래 손을 잡고 앉아 있고 싶어서 사서, 어머님 침대 옆에 놓아둔 것이다)에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며 앉아서 어머님께 '사랑한다, 감사한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다'고 울며 고백하던 시댁 가족들! 어머님은 고단했던, 너무나 고단했던 이 세상에서의 삶을 뒤로하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가셨으리라.

여고생이었을 때 우리 반에 특이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나와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가 했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난 언제 죽을지 몰라서 매일 속옷을 깨끗하게 입고 다녀."


열아홉, 그 나이의 아이가 죽음을 매일 생각하고 살았다는 게 그때도 지금도 매우 신기하게 느껴진다. 하긴 죽음은 태어난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니까.


어릴 때 함께 놀던 튀김집 딸은 백혈병으로 중학생 때 하늘로 떠났고, 학교에서 가장 예뻤던 중3 우리 반 반장은 대학 졸업 후 대기업 비서로 근무를 하다가 교통사고로 급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들었다. 30대 교사 시절, 나와 가장 친했던 교사도 출근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수원의 성빈센트 병원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입원해 있다가 세상을 떠나갔다. 나는 셋째 아이 육아휴직 중일 때라 모시고 살던 시어머님께 아기를 맡기고 매일 병원에 갔었다. 내게, 그 선생님은 공책에 '고마워요, 선생님! 나의 언니예요.' 라고 비뚤비뚤하게 글씨를 썼다. 그녀는 그때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눈부시게 예뻤던 그녀의 얼굴은 잿빛을 띠고 있었다. 어린, 또는 젊은 사람들이 갑자기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나 또한, 여의도 성모병원 백혈 병동 무균실에서 친하게 지냈던 세 사람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지 않았던가! 죽음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잘 산다는 게 뭘까' 깊이 묵상한 적이 있다. 매일 속옷을 깨끗하게 갈아입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의 평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로운 상태에서는 나도 남도 괴롭히지 않는다. 그리고 매 순간 감사할 수 있다. 용서하지 못했던 과거의 사람도 용서할 수 있고 축복해 줄 수 있다. 용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매우 적극적인 사랑이라 하지 않던가! 그리고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며, 어떤 이유에서건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인연에 대해서도 '그동안의 좋았던 관계 고마워. 어디에 있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빈다.'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소명을 갖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 소명이 뭘까'를 자주 떠올리며, 자기의 달란트를 잘 사용하면서 서로 나누고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또한 우리는 '우리들의 블루스'의 마지막 자막의 글처럼,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니 내 삶의 무대 위에서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지나치게 남 눈치를 보지 말며, 내 몸과 마음의 신호에 귀 기울이면서 물 흐르듯 살아가면 될 것 같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붙머있는 오랜 악습을 떼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루가 모여 삶이 된다. 그냥 오늘 하루만 잘 살면 되는 것!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내가 바라보는 아름다운 하늘과 내 앞의 음식에 감사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비겁하게 피하지 않으며, 그렇게 살면 될 것 같다. 삶과 죽음에 대해 묵상을 하다 보니 답은 무척 간단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그냥 하루만 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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