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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Mar 26. 2024

용서받을 자격

영화 '밀양'을 세 번 보았습니다. 전도연의 연기와 탄탄한 구성, 무엇보다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전도연은 홀로 아들을 키우는 피아노 선생님입니다. 남편은 이미 죽었지만,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아들과 함께 내려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건은 아들의 죽음으로 시작됩니다. 오로지 아들 하나 만을 바라보고 살던 전도연은, 식음을 전폐하고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있었지요. 그러다가 교회 신도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을 만나고, 용서의 마음까지 갖게 됩니다. 아들을 죽인 학원 원장을 찾아 교도소를 향합니다. 전도연의 표정은 비장하면서도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당신을 용서하려고 여기 왔습니다."


전도연보다 백 배는 더 평화로운 얼굴을 한 원장은 목사님 같은 온화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전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어요."


그 순간 전도연의 미친 사람처럼 부르짖습니다.


"내가 용서 안 했었는데, 누가 감히 당신을 용서했어?"


발작을 일으키듯 정신줄을 놓은 전도연은 마침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합니다.


전 영화를 보면서 자식 잃은 어미의 심정, 그리고 자기 멋대로 평화를 찾는 사람들의 비양심적인 태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최소한의 답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최소한 남을 너무 아프게 하며 살지는 말자! 그리고 용서를 빌 때는 온 마음을 다해 참회할 것! 내가 혹시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하며 살 것!


제가 막내며느리로 시어머님을 17년 모시고 살면서 마음고생을 굉장히 많이 했지만, 그리고 몸과 마음이 다 망가져서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나왔지만, 제가 다시 건강을 되찾고 밝은 마음으로 치유받은 것은 시어머님의 진심 어린 말씀이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많이 미안했다."


그래서 분가 후의 12년은 다른 고부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퇴직 후에 종종 보던 KBS <아침마당>에서 한 정신과 전문의가 했던 강의가 떠오릅니다


"보통 여자들이 남편을 용서하지 못한 채 가슴에 시퍼런 멍을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당신은 옛날 일을 자꾸 끄집어내서 짜증 나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남편들의 모습은 아내를 더욱 아프게 합니다. 10년 전이든, 40년 전이든, 아내가 그 일에 대해 고통스럽다고 말하면 남편은 무조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아내의 고통은 40년 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고통과 같으니까요. 가슴을 아프게 한 상대방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상처가 비로소 치유가 됩니다."


전 시어머님의 미안하다는 한 말씀에 치유가 된 경험이 있던 사람이라, 그 전문의의 강의가 맞다는 걸 알았습니다.


양심이 없는 특별한 사람들의 뇌 사진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니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평범한 우리 모두는 인생길에 너무 나쁜 짓은 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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