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나니 새로운 인연이 참 많이도 생겼다. 남편과도 그렇지만, 어쩌면 그로 인해 맺어진 인연이 더 기막힌 게 아닌가 종종 생각할 때가 있다. 동서 형님 한 분을 보더라도 참 특별한 인연이 아닌가! 서로 다른 남자를 사랑했는데, 그 집의 며느리가 되어 같은 인연을 만나고, 같은 고민을 하고.
그런 인연 중에 내게는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분이 계시는데, 바로 나의 시 외할머님이시다. 할머니는 내게는 좀 힘들 수 있는 '시어머님'의 친정어머님이신데, 충청도 대천에 있는 큰아들 집에 사시다가 결혼 안 한 손주들을 몇 년 돌보시느라 수원에 올라와 계셨다. 내 걸음으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사셨는데, 손자며느리가 귀여우셨던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셨다. 어찌 생각하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할 정도다.
지금은 내가 결혼한 지 20년이 훨씬 지났으니 어느 정도 음식을 잘하는 편이지만, 그 당시 새댁이었던 나는 음식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남편은 '아내 사랑'으로 맛있다며 먹어 주었지만, 할머니 입맛에는 턱없이 부족했을 텐데도 항상 맛있다고 칭찬을 하셨다. 특히 '잡채'를 자주 해 드렸는데, 아주 맛있게 드셨고(정말 맛있는 줄 내가 착각할 정도로 ^^) 그 이야기를 주변에 과하게 말씀하셔서 시댁 어른들께 '잡채'에 관한 칭찬을 황송할 정도로 많이 듣곤 했다.
또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다. 월급을 타면 매달 할머니께 용돈을 조금씩 드리곤 했는데, 그날은 두어 번 거절하시는 게 아니라 심하게 내 손을 뿌리치셨다. 많이 당황할 정도로 말이다.
"할머니, 왜 그러시는데요?"
"너 방학인데, 월급도 못 타잖아."
"할머니, 선생님들은 방학을 해도 월급을 줘요."
"그러냐?"
지금도 나를 웃게 하는 행복한 추억이다.
그렇게 나와 몇 년을 자주 만나시다가 할머니는 시골로 내려가셨다. 큰아들과 큰며느리가 있는 할머니의 집으로. 그래서 그 이후로는 방학 때마다 가끔 뵈는 정도였다.
내게 그리도 따뜻하셨던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한 건,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의 여름방학이었다. 시댁 가족들 모두 시골에 내려갔다. 내가 뵌 할머니 중에 가장 미인이셨던 할머니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작아져 있었다. 손목이 나의 반 정도나 될까? 사 가지고 내려간 고운 모시옷을 입어 본 할머니의 모습은 마치 허수아비 같아 마음이 아팠다.
늦은 밤이 되었다. 할머니 옆에서 손을 잡고 누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갑자기 일어나셔서 이불장 이곳저곳에 손을 넣어보셨다. 그러시더니 꼬깃꼬깃한 봉투 하나를 내 손에 쥐여주셨다. "애들 은수저 하나씩 해 줘라." 난 순순히 할머니의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목에 걸려있던 금목걸이를 빼서 할머니 목에 걸어드렸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본 시댁 어른들께서 그대로 두면 나중에(돌아가시고 나면) 곤란하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목걸이를 빼서 내 목에 걸었다. 할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주셨던 봉투가 떠오른다. 얼마나 오래되었으면, 얼마나 만지작거렸으면, 봉투가 닳고 닳아 가루가 일어날 것 같았던, 모서리는 닳다 못해 작은 구멍이 나 있던 할머니의 봉투. 그 안에는 5만 원이 들어있었다. 누군가에게 받았는지, 아니면 따로 담아 놓으셨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내게 주신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