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Jun 05. 2024

책 선물

"고객님, 전 이렇게 책이 많은 집은 처음 봐요. 책을 굉장히 좋아하시나 봐요?"


몇 년 전, 침대 케어를 하러 우리 집에 두 번째 방문한 젊은 기사님의 말이다. 첫 방문 때는 일을 하면서 계속 안방을 두리번 두리번하는 모습이 좀 불편했었는데, 그 이유를 이번에 알았다.


"고객님, 저는 대학을 못 갔어요. 첫 직장이 우리나라 최고의 백화점이었어요.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대놓고 무시하고 차별하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다가 4년 만에 나왔어요. 지금 이 일은 실적 위주이고, 공정하니까 참 좋아요. 전 언젠가는 꼭 대학에 갈 생각이에요. 그리고 책도 꾸준히 읽고 싶은데, 밤까지 일을 하다 보니 힘들어서 책을 몇 년 동안 한 권도 못 읽었어요. 항상 공부와 책에 대한 마음이 있으니까, 많은 책을 보면 마음이 좀 흥분이 되더라고요. 지난번에 여기 와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만에 만난 제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대에 야간고를 졸업하고 이어서 야간대를 졸업한 시누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요리사 일을 하면서도 평생의 꿈을 이루신 시누님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기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도 꼭 이룰 거라고 말했다. 일을 하다가 목이 마르니, 지난번의 시원한 둥굴레차가 먹고 싶었는지, 물을 마셔도 되냐고 내게 물었다. 내 목발(발목 골절 수술 후 퇴원했을 즈음)을 보고 스스로 먹겠다는 소리였다. 나는 당연히 된다고 말하니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일을 마친 기사님께 주고 싶은 책을 계속 생각했다. 지난달에 구입한 책들 중에 가장 추천하고 싶은 E2라는 책이 떠올랐다. 신념을 갖고 열심히 도전하라는 의미였다. 목발을 짚고 책장 앞으로 가서 책을 꺼내 주었다. 기사님은 자기도 고등학생 때 다리가 부러져서 3개월이나 입원했던 사람이라고 하면서, 빨리 완쾌하라는 말과 함께 꾸벅 90도 인사를 하며 책을 받았다.


교사로 살면서 느끼던 작은 보람, 그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침대가 깨끗해지고 좋은 나무 향까지 나니,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끄러운 고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