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가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 집안 경조사에 알렸는데, 전혀 반응이 없던 사람이, 시간이 흘러 본인의 경조사에 와달라고 연락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어떤 경우는 내가 부의금을 보냈는데도, 내 경조사에 모른 척하다가, 얼마 후 또 소식을 알리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는 좀 황당하다. 인간관계가 서로 주고받는 소통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떤 경우는 사례를 하겠다고 일을 부탁해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음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다. 어머님은 가까운 친척의 경조사에는 다 함께 가자고 하셨고, 좀 멀다 싶으면 당신 혼자서 삼 남매의 봉투를 챙겨서 가시곤 했다.
"에미야, 봉투 세 개 만들어라."
나는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봉투 세 개에 돈을 넣고 이름을 정성껏 써서 드리곤 했다. 칭찬에 인색하셨던 어머님이셨지만, 내 필체가 좋다는 말씀은 자주 해주셨고, 남들에게도 자랑을 꽤 많이 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 봉투에 넣었던 돈을 제대로 돌려받은 적이 없었고, 세 개 모두 어머님 몫이라고 생각했다. 평생을 너무나 가난하게 살아오신 분께 내 통장은 어머님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목돈을 요구하시는 대로 다 해드렸고, 심지어 작은 아파트를 구입해서 주말 쉼터로 살고 싶다는 말씀에도 흔쾌히 네,라고 대답했다. 내가 학교에서 대출을 받은 돈과 아주버님이 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돈이 반반 합해져서 어머님 소유의 작은 아파트가 생겼다. 내 남편은 살고 있던 아파트 대출이 있어서 내가 책임을 진 것이다. 어머님과 연결된 많은 돈들은 따짐 없이 다 해드려도 아까운 마음이 없었다.
호구로 살면 본인은 점점 바보가 되고, 상대방은 그러려니 요구하다가, 어느 선을 넘으면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유명인들 중에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고, 주변에서도 가끔 그런 사람을 보게 된다.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데, 누가 그 사람을 존중하겠는가!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해 주겠는가!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스스로도 잘 챙기고, 배려도 적절히 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