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발인은 21일.
새벽 4시 반. 요셉은 어머니가 보낸 이메일을 읽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그럼에도, 요셉은 집을 나섰다. 끼이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레베이터 내부는 지나치게 어두컴컴했다.덜커덩. 끼익. 덜커덩. 끼익.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요셉은 지워버렸던 아버지를 꺼내보았다.
낡은 아파트 앞. 요셉은 걷기 시작했다. 파리의 새벽은 어두웠다. 가로등의 노란 불빛은 쓸쓸했다. 요셉은 힘주어 걸었다. 떨어진 낙엽을 밟아 부스러트렸다.
하나 셋. 하나 둘. 요셉은 입을 뻥끗. 소리없이 입을 벌려 숫자를 셌다. 요셉은 아버지와 걸을 땐 꼭 이렇게 숫자를 셌다. 하나 셋. 아버지 발 한 걸음, 요셉 발 세 걸음. 하나 둘. 아버지 발 한 걸음, 요셉 발 두 걸음. 하나 하나. 아버지 발 한 걸음이 요셉 발 한걸음. 부자(父子)의 발걸음이 꼭 같아졌을 때 요셉은 한국을 떠났다.
빵집은 이미 부산했다. 탕탕. 밀가루 반죽을 쳐대는 소리가 여기저기 울렸다. 퉁퉁. 반죽 두들기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요셉도 손을 씻고 대열에 합류했다. 물컹물컹 반죽이 다져질 때까지 요셉은 강하게 반죽을 두들기고 던졌다. 가늘던 요셉의 팔뚝은 반년 만에 꽤 두툼해졌다.
파리 시내에서도 꽤 큰 편에 속하는 빵집. 여기서 일하게 된 건 순전히 아버지의 신앙 덕이었다. 빵집 주인 마크롱은 신앙심이 깊었다. 전 세계 사람 중 0.01%만 믿는다는 신앙. 아버지와 마크롱의 신앙이 같은 지 요셉은 몰랐다. 그런데 면접 때 요셉 아버지의 신앙을 우연히 들은 마크롱은 바로 "다꼬(d'accord, 좋다)"라고 외쳤다. 신앙심 깊은 사람은 파리에도 있구나, 하고 요셉은 생각했다.
아버지는 신앙인이자 범죄자였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0.01%가 믿는 신앙을 아버지는 믿었다. 마크롱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는 신앙인이어서 범죄자가 됐고, 마크롱은 신앙인이어서 요셉을 채용했다.
아버지는 스물 아홉에 감방에 갔다. 요셉이 세 살일 때다. 11개월을 감방에서 산 아버지는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신앙에 관련된 일을 했다. 기도실 바닥을 빡빡 밀기도 하고. 신앙 서적을 찍어내기도 하고. 신앙을 믿으러 오는 어르신을 태우고 운전하기도 하고. 아무튼 신앙에 관련된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신앙 때문에 일을 못 구했지만, 신앙 덕에 먹고는 살았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한 것도 신앙 덕이었다. 어머니도 아버지처럼 열렬한 신앙자였다. 그래서 어머니도 아버지를 도와 기도실 바닥을 삑삑 밀기도 하고. 신앙 책을 나르기도 하고. 신앙을 믿는 어르신들에게 믹스커피를 타 드리기도 했다. 열렬한 신앙을 쫓던 그들에게 아들이 신앙자가 아니라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요셉은 외동이었다.
동이 트고 손님들이 몰려왔다. 빵 굽는 냄새가 빵집에 가득하다. 게으른 파리지앵도 빵을 찾을 땐 어느 때보다 부지런하다. 갓 구운 바게트를 반의반으로 잘라도 혼자 먹기 힘들 정도로 크다.
요셉도 처음 파리에 왔을 땐, 그러니까 처음 난민 숙소라고 불리는 곳에 왔을 땐 바게뜨만 먹었다. 1유로로도 배를 가득 채우는데는 딱이다. 식감도 좋다. 요셉은 촉촉한 바게트 속살을 좋아한다. 축축한 것도, 말라비틀어진 것도 아닌 속살을 뜯어먹을 때면 '빵보단 밥이지'라던 어머니 말은 거짓말이 된다. 질긴 겉면도 초콜릿 크림에 발라먹으면 혓바닥이 헤헤 거린다. 고기를 안 먹는 요셉에게 빵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다.
고기를 안 먹는 요셉에게 빵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다.
요셉은 신앙인이 아니지만 범죄자가 될 뻔했다. 요셉이 그 애니메이션을 본 건 열 두살 때.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언제인지도 모를 과거. 마을을 지키려 멧돼지를 죽인 청년은 저주에 걸린다. 밀가루 반죽을 두들긴 것도 아닌데 청년의 오른 팔뚝은 틈만 나면 울그락불그락 솓아오른다. 멧돼지를 죽일 때 화살을 당겼던 팔뚝이다. 청년은 저주를 풀기 위해 여행을 한다. 여행에서 무엇인가를 파괴하고 죽이는 인간들을 만난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요셉의 팔뚝은 팔딱팔딱. 엄지와 중지를 죽 당겨도 잡힐만큼 바짝 말라있던 요셉의 팔뚝이 청년의 팔뚝처럼 굵어지는 것 같았다. 심장처럼 뛰는 것 같았다. 요셉은 팔뚝이 두꺼워지는게 싫었다. 무서웠다. 그래서 요셉은 살생하지 않기로 했다. 총을 쏘지 않기로 했다. 화살을 쏜 청년의 팔뚝처럼 되기 싫어서.
무엇인가를 죽이지 않고도 팔뚝이 두툼해질 수 있다는 걸 그 때의 요셉은 몰랐다.
요셉은 마크롱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마크롱은 애도를 표했다. 진심으로 슬퍼했다. 0.01%끼리의 우정일지 몰랐다. 마크롱은 요셉에게 잠깐 한국에 다녀오면 어떠냐고 했다. 요셉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해가 졌다. 거리는 다시 어두워져 있었다. 낙엽은 요셉의 발길에 으스러졌다. 한국에 가면 요셉은 범죄자가 될지 모른다. 아버지처럼. 요셉에겐 신앙심이 없지만, 아버지처럼 총을 쏘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가 기억난 자리에서 요셉은 꽤 오랫동안 서성였다. 내일은 비행기 표를 끊을지도 모른다고, 요셉은 생각했다.
<끝>
이 소설은 아래 기사들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7400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058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