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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소설 Nov 23. 2017

별장

'환경주의'에 대하여

도시를 떠나자!


드디어. 강석아빠는 도시생활을 끝내기로 했다. 은퇴를 한 지도 어연 3년. 마누라처럼 지지고 볶던 도시를 이젠 떠날 때가 됐다. 유주학선 무주학불(有酒學仙 無酒學佛)이라던가.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울 마음이었다. 유유자적. 자연과 벗하며 사는 인생. 에코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그린이라는 단어에 인생의 미학이 담겨있다는게 강석아빠의 철학이다. 녹음이 우거진 숲속을 뛰어다니리라.


ⓒ 혜산 유숙, 세검정, 1827


강석아빠가 자연과 환경을 끔찍히 아낀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강석아빠는 쓰레기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때면 전기도 꼬박꼬박 끈다. 세수한 물은 반드시 발 씻는데 쓴다. 19층 아파트를 매일 걸어올라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고속도로 건설 반대 운동에 서명으로나마 참가한 적도 있다.

어릴 때야 천지가 논밭이었다. 지나가다 사과 따 먹고. 계곡에서 수영하고. 흙을 밟고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게 아니겠나. 빨리 시골로 가서 텃밭도 가꾸고 바람도 맞으며 살고 싶다. 강석아빠는 이제 시골로 간다.


시골행에 무엇보다도 급한 게 집 짓기였다. 땅은 오래 전에 사두었다. 강석아빠는 바로 건축업자를 불러 설계에 착수했다. 건축업자는 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목재로 지어야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린다 했다. 목재는 핀란드산이 제격이다. 뼛속까지 시리는 북유럽 바람이 키운 나무.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사랑의 글귀를 쓰기도 하는 낭만적인 나무. 핀란드 자작나무다. 건축업자의 추천대로 강석아빠는 핀란드식으로 집을 짓기로 했다.

오래된 소나무도 하나 있어야 하지 않수. 건축업자의 말을 듣던 강석엄마가 한 수 거들었다. 그래. 꼬불꼬불 늙은 허리를 지닌 소나무도 하나 세워주쇼. 강석아빠가 말했다. 예산이…. 망설이는 건축업자를 향해 강석아빠는 딱 200만 더 얹혀줄테니 그리 해달라 했다. 일을 해치울 땐 불도저같이 밀어붙이는 게 또 강석아빠 스타일. 강석아빠의 어깨는 쭉 올라섰고 강석엄마의 입은 헤벌쭉 벌어졌다.


위이잉. 위이잉. 불도저 엔진소리가 산속에 퍼졌다. 땡볕에 서 있는 강석아빠의 등허리는 축축하게 젖었다. 그러나 강석아빠에겐 땀도 중요치 않다. 여기여기 더 올리고. 저기저기 더 내리고. 그렇지. 그렇지.  막노동꾼들의 몸놀림을 눈으로 바쁘게 좇았다. 큰 길과 이어지는 이 길은 포장을 해야겠지. 울타리는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볼까. 강석아빠가 혼자 주절거렸다. 1억으로 시작한 공사비용은 어느새 두 배 가까이 불었다. 은행 대출은 걱정말라고 강석아빠는 혼잣말을 했다.

마음 한 편을 불안하게 만드는 게 하나 있긴 했다. 아들 강석이었다. 생김새만 빼곤 하나도 강석아빠를 안 닯지않은 애였다. 성격은 소심하기 그지 없다. 도시생활에 물든 것도 강석이의 문제였다. 자연과 환경 따윈 생각도 하지 않는 녀석. 원자력발전소가 없으면 전기는 우째 쓰냐고. 바람 돌려서 햇빛 모아서 전기 쓰실 거냐고 빠득빠득 우기는 것 봐라.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즘애 아니랄까봐 무엇이든 도시적인 것만 좋아한다.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사는 녀석이 여기로 따라올까…. 강석아빠는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사단이 났다. 그런데 부자전쟁(父子戰爭)은 엉뚱하게도 밥상머리에서 벌어졌다.

고등어 먹으면 안 된다니까. 강석아빠가 강석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저기 바다 건너서 터진 거 몰라. 원자력 말야. 국내산인데? 강석엄마가 되물었다. 바닷물이란게 결국 다 흘러 흘러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거야. 강석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뭐해. 이게 다 인간들 욕심 때문이지. 가지고 가지고 해도 끝을 모른다니까. 환경도 아끼고. 자연도 보호하고. 그러자구. 응? 응?

강석아빠의 이 말이 강석이의 심기를 긁어버렸을까. 고등어 한 마리를 먹고, 또 하나를 더 먹던 강석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만 좀 하세요. 자기는 집짓는다고 할아버지가 키운 나무 다 베어놓고선.

뭐야? 야. 너 말이 그게 뭐야. 아빠한테. 그리고 짜식이 할아버지 돌아가신 적이 언젠데. 그게 아빠 땅이고 아빠 나무지. 그리고 내 땅에 집 짓는데 아들이 어쩌고 저쩌고. 됐다. 세속적인 녀석이 뭘 알겠니.

아무튼 전 안가요.

강석이의 짧은 카운터펀치. 강석아빠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좀 참아요, 강석아빠. 강석엄마의 속삭임만 식탁의 침묵을 메웠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가을. 강석아빠와 강석엄마는 시골집 앞에 섰다. 드디어. 드디어. 3개월만에 후딱 완성한 시골집. 1층으로 계획된 집은 2층이 되어있었다. 30평이었던 집은 넉넉히 70평이 되어있었다. 통나무로 짓기는 했는데, 어쩌다보니 집 외관의 절반은 유리창. 시원하니 보기좋네. 큰 길에서 쭈욱 집 앞까지 이어지는 백여 미터의 흙길은 까만 아스팔트로 뒤덮고. 깔끔하니 보기좋네. 울창하게 서 있던 나무 너댓개는 동강. 뿌리기둥만 남아있었다. 거추장스럽지 않고 보기좋네, 우리 별장.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 집은 시골집이라기보다는 별장에 가깝다는 사실을 강석아빠도 부인하지 못했다.

그래도 쨍그랑. 쨍그랑. 강석아빠와 강석엄마는 와인잔을 부딪치며 건배. 자연 속에 살으리렸다, 살으리렸다. 강석아빠는 소리를 불렀다. 호호호호호. 여보 우리 재미나게 살아봐요. 강석엄마의 웃음소리도 좋다.

가을바람이 강석이네 별장을 훑고 갔다. 

내일부턴 비료를 뿌려서 텃밭을 가꾸어야겠다고, 강석아빠는 생각했다.



이 소설은 아래 기사를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7/2017072703489.html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8056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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