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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Sep 05. 2022

신규 간호사가 사직 면담을 하기 전에는,

이런 생각들을 해본다. / 독립 5개월차, 사직을 결심하다.-3

아니, 결심해야한다.




사직을 결심했다. 결심해야 했기에, 결심했다.



나의 마음속 사직 표는 말 그대로 끽하면 낼 것 같다가도, 못난 그 책임감 때문에 쿨하게 던져지지 못하고 있었다. 사직하는 것이 내게 더 큰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무엇인지 모를 두려움과 버리지 못하는 일말의 희망이 공존하기도 했다. 해서, 참을 수 있을 만큼은 참아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그런 일들을 겪다 보니.


사직서를 나 스스로 내는 것이 맞을까. 사직을 해야 한다고 결심하는 데, 내 마음이 편안하긴 한 걸까.

사직 면담이라는 그 불편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 사실 때문에, 상상만 해도 숨 막혀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이곳에
결국 부적응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가 힘든 걸까.



그냥 단지, 내 마음속에 늘 지니고 있던 이 사직서를 누군가가 대신해서 꺼내어 준다는 느낌이 1프로라도 든다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냥, 속으로 계속해서 되새김질했다.

'그래, 원했잖아. 가 원했던 결말이잖아.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잖아. 한 시라도 빨리 할 수 있게 된 거잖아. 원래부터, 이맘때쯤 어찌할지 결정하려고 했었잖아.'






그날이 있고 다음날 그렇게 친구 앞에서 울었던 나는 집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이트 끝나고도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동기와의 통화로 인해 생각이 더 많아졌다.


워낙에 일을 시작한 후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불안감에 사로 잡혀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의미 없는 생각들로 잠을 못 이루곤 했다.


그래도 입사 초에는 너-무 피곤해서, 어영부영 잠에 들었는데 막상 이런 일이 생기니 도통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래도 나름 책임감 하나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왔다고, 그렇게 자부했던 지라-. 부모님께 말해야 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그 병원은 정말 웃기지도 않네. 왜 너네 간호사회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자꾸 문제가 생기는 거니? 특히 지금 그 병원처럼 어쭙잖은 곳에서. 마음 좀 추스르다가, 더 큰 병원으로 가."


어머니의 말은 반쯤은 정말 힘들어하는 딸을 위한 위로고, 반쯤은 '딸이 워낙에 본인이 원하는 병원에 취업하지 않았던 지라, ' 사직을 환영하는 듯했다.


이 병원은 지역에서 평판이 좋지 않아서 더 할 것이다.




반면에 아버지는,

"야. 지금 관두고 어딜 가려고 해. 가까운 곳이 최고지. 하루라도 더 돈을 벌 생각을 해야지. 너는 여자애가 나이 먹고 쉬려고 하냐?"


그냥, 적당히 걸러 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다음 날, 출근 전 마지막 쉬는 날.

그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섣불리 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사직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목록화했다.



<사직을 섣불리 해서는 안 되는 이유>
1. 이직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막막함.
2. (현재 이 병원이 집에서 가까우므로) 이직 시 직장이 집에서 멀어질 수 있음.
3. 6개월이라는 경력은 짧아서 어필하기 힘드므로 새로운 시작을 생각해야 한다.
4. 또 새로운 곳에서 또 새로이 데일 생각을 해야 함
5. 원하는 부서에 발령받을 수 있을까?
6. 다른 곳이 더 최악이면 어떡하지?
7. 괜한 책임감이 내 인생에서 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8. 그냥, 왜인지 모를 '직장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


<사직을 해야 하는 이유>
1. 3차 병원 치고 야간 수당은 적은 편
2. 3-4 나이트 기본
3. 나이트 개수가 많은 편
4. 오프 개수는 적은 편
5. 사회초년생 치고 나쁘지 않은 급여이지만, 액수만 그러할 뿐 업무 강도에 비하면 너무 적게 느껴진다.
6. 분위기는 험악하다.
7. 중증도가 높은데 반해 담당하는 환자수는 많다.
8. 하고 싶은 건 많지만 그중에 간호사가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9.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이직을 해야 한다.
10. 난 고급인력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훨훨 날고 싶다.
11. 결정적으로 과하게 힘드니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역시나, 사직하기를 결심했다.








데이를 맞이했다.

오늘따라 일이 정말 너무나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업무 효율이 30%조차도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이미 나라는 간호사는, 입사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허덕거리는 존재일 뿐인데.

그래서 업무 효율이 70%도 채 안 되는 그런 나부랭이 존재인데.


근데 그 와중에도 30% 정도밖에 안 나오는 것 같다.

이미 결정 내릴 건 다 내려놓고, 잡생각 아닌 우울감에 사무쳐 있다.

.

.

.

그렇게 어영부영 일했다. 마음이 뜨니 몸도 움직이지를 않았다. 오늘 이브닝 번 선생님은 나보다 일 년 더 높은 선생님이다.


선생님께 인계를 드리러 쭈뼛대며 다가갔다.


선생님은 전산을 보고 계셨는데, 내가 말을 걸자 말이 끝나기 전에 말을 자르며 나에게 안되어있는 것들을 찾아서 읊었다.

"인계는 됐고, 전산에 표시 안된 것들..."

"아 죄송합니다. 지금 하겠습니다." 나는 내 전산 자리로 돌아갔다.



3시가 퇴근인데, 3시가 퇴근이지만.

나는 퇴근을 못하고 있다. 안 하고 있다. 부서장님과 나눌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일도 마무리 짓지 않았다. 데이번 선생님들 모두가 인계를 마치고 집에 가는 시간을 기다렸다.


사실 데이 근무 중에 했으면 좋겠지만, 그 이후에 푹- 가라앉을 분위기를 내가 조성했다는 걸 받아들이기란 너무 가혹할 것 같았다. 게다가 업무를 뒷전에 두고 면담을 신청하기엔 데이 근무란 너무 바쁜 듀티였다.


교대근무 중에는 더더욱이 힘든 건, 데이번뿐 아니라 이브닝 번 선생님들까지, 사람 수가 두배가 된다.

내가 사직 면담을 했다는 그 상황에, 그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을 한 명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데이번의 퇴근을 기어코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  내가 사직 면담을 하기 위한 상황은 언제인가 눈치를 보느라, 분위기를 살피느라 내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결국 이브닝 번 선생님은 나를 계속해서 불러야 했다.

뒤돌아보면 누락된 일들이 보이고, 다음 업무로 넘어가려고 하면 또 보이고, 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얼굴은 너무나도 잿빛이었기에-.

"아니-. 왜, 왜 그러는데요. 뭐가 문젠데..."

뭐가 문제길래 이렇게 업무를 이렇게 했느냐-


"죄송해요... 선생님 저 오늘 사직 면담하려고요..."

"어? 왜, 왜요."

"... 그냥.. 제가 너무 부족한 탓이죠..."


.

선생님은 너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표정과 아쉽다는 표정을 동시에 지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일을 해냈다.

4시였다.


.

.

그렇게 4시 반이 지나도록 쭈뼛대며 부서를 떠나지 않았다.

부서장님이 드디어, 이제야 시간이 좀 나 보여서 부서장실을 10초마다 한 번씩 흘긋거렸다.


"어-너 왜 아직도 안 갔어?"

"...." 막상 하려니, 대답이 나오지 않고 그저 '나, 할 말 되게 많아요'라는 슬프고도 확신에 찬 눈으로 부서장님을 쳐다봤다.



부서장님의 얼굴은 찌푸려져 있었다.

"아-. 너, 나한테 할 말 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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