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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26. 2022

결국 나는 사직을 결심했다.

아니, 결심해야한다. / 독립 5개월차, 사직을 결심하다.-2

독립 5개월차 신규간호사, 사직을 결심하다.-1





"...너, 지금 장난해?"


인계를, 말 그대로 중구난방으로 줬다. 그야말로, 지리멸렬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인계를 다시 준비해서 다시 주라고 한 듯 하다. 하지만 멘탈이 저세상으로 가있다는 '핑계', 제대로 상황파악도 안 된 채로 나는 퇴근을 하려 했다.



내 미간이 0.5초간 찌푸려졌다.

아-. 무슨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니, 벌어지게 될 까.



"앞으로 뭐 물어보지도 말고, 말 걸지도 마. 너같은 애, 이제 가르쳐주고 싶지도 않으니까"

선생님의 시선은 나를 내리 깔듯 보고 있었다.

내가 키가 좀 더 크지만, 선생님보다 한없이 작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손가락에 마비가 오는 것 같다.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집에나 가."



엉거주춤-. 중간 그레이드의 선생님께서 중환자실 출구를 여는 버튼을 눌렀다. 나는 작은 보폭으로 중간 그레이드번 선생님을 따라 나갔다.



"왜, 무슨 일인데. 쟤 뭐 잘못했어?"

하지만, 나와 함께 근무하신 나이트번 선생님께서 나오지 않으시고 프리셉터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아니-. 쟤가 뭘 했냐면요-."

내 귀에는 그저, '블라블라'로 들렸다. 머리가 새하얘지며 앞이 까매지는 것만 같다.

저혈압증세처럼, '아, 공황장애가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두 분의 대화가 희미해지며, 중환자실 문이 빠르게 닫혔다.

분위기는 삭막했다. 잠자코 나는 선생님을 기다렸다. 나이트번 선생님은 내 입사 초기에 나를 별로 안좋아하시는 듯, 눈빛과 말투가 차갑기 짝이 없었는데.

오늘 좀 상냥하게 대해주셨던 것 같은데, 내가 다 망쳤다.



중간그레이드 선생님께서도 내게 무슨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제게 인계를 다시 주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저는 잘 못 알아듣고 집에 가려했고요.."


아-..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몇 분 후, 나이트 차지선생님이 문 밖을 나왔다.

선생님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나이트 오프'의 그, 오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늘 오후에는 밖에 나가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

 

그나마, 내가 일을 다니며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은 '내 직장에 대해, 내 직업에 대해 잠시나마 잊는 것' 이었다. 혼자 있으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사무쳐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어떻게든 친구들을 만났다.



나이트는 원래 퇴근시간은 7시 반, 이라지만.

오버타임을 하다보면 8시 반에서 9시사이에 끝나기 일쑤였다. 오늘도 그랬다. 전일 오후 9시 반부터 근무했는데. 거진 12시간을 병원에서 썩어나듯 일을 해서 평소 퇴근 후 집에 오는 버스에서 시체처럼 나자빠지듯 잠에 들어 집을 지나칠 때가 많을 만큼 정말 피곤해 죽겠는데도, 오늘은 버스는 커녕 집에서조차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눈만 감고 잊으려 노력한다. 어떻게든 흘러갈 거라고, 다음날 욕을 먹더라도 일단 오늘은.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마음도 좀 쉬게 해주자고,

결국'생각하지 말자'는 생각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

.

.


오늘 데이번 근무자로는 내 프리셉터 선생님도 계셨지만, 우리 사번 유일하게 남자인 동기도 있었다.



동기에게도 아직까지는 지리멸렬하게 인계하고 있지만, 우리들끼린 서로 눈을 감는다. 어차피 집에서 뚫어져라 병원 어플리케이션만 쳐다보다 출근한지라, 서로 말하고 있는 것 쯤이야 이미 집에서 본 내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초반엔 이상한 인계를 많이 주기도 해서, 사실 듣는 것보다 내가 알아가는게 더 마음 편할 때도 있다. 해서, 동기들끼리는 인계를 아주 너그럽게 받았다.



오전 11시가 넘어감에도 잠이 오지 않아, 동기들이 있는 그룹대화창에 '전화 되는 사람들 전화주라...'라며 세상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 말을 남겼다.


동기들은 번갈아가며 한 명씩 전화해주었다. 이브닝번 출근을 앞두고 있는 동기, 그리고 집에서 쉬고 있는 동기 순서대로 전화가 왔다. 왈가왈부 이야기를 했다. 다들 함께 막막해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나를 위로했다.

 

오후 4시쯤이 되서야 약속을 나가기 위해 채비를 했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 카페에 가서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나를 토닥였다. 일단 오늘은 잊자, 재밌는 시간을 보내자며 화제를 돌리려고 애를 썼다.



시간이 조금 지나, 마지막 동기- 오늘 데이로 근무했던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

"여보세요."

"어어, 밖인가보네. 일 끝나고 이제 전화하는 건데,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오늘..." 나는 내 동기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응? 왜? 퇴근하고도 무슨 일이 있었어..?" 찝찝했다.

그래, 선생님이 쿨하게 넘기기엔 내가 정말 괘씸하게 행동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근무한 6개월동안 동기를 제외한 선생님들 중에서 내가 가장 의지했던 선생님은 내 프리셉터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윗 선생님들 중에 가장 연락을 많이 주고 받았고,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볼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일테고, 사적으로 연락했다고 보기엔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 기간동안, 내 프리셉터 선생님은 무언가를 혼자만 알고 넘어가실 만한 선생님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응, 그 선생님. 너 가고 나서도 모든 선생님들을 붙잡고 미주알 고주알 너랑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

"...뭐라고?" 이건, 뭐라고 이야기를 했냐고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상황을 상상하기가 너무 싫어서 하는 질문.

"그 바쁜 데이 근무 와중에도 짬내서 데이번 선생님들 한 명 한 명 붙잡고 이야기하더니, 이브닝번 선생님들 한 명 출근하시면 그 얘기하고, 또 누구 출근하면 또 붙잡고 그 얘기하고.."



미주알 고주알. 짬내서 내 이야기하기.






아-. 선생님은 이제 나를 버리시는 게 아니야.
내가 너무나도 큰 잘못을 저질러서, 나를 그냥 매장시키고 싶으시구나.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오늘 오프, 내일도 오프. 이틀간 쉬고 데이로 출근해야하는데-.

그 데이를 상상하니,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다.




동기와 전화를 끊고 나는 친구앞에서 엉엉 울었다. 친구는 당황과 걱정하는 마음으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이냐고 했다. 나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려 화장이 다 지워지려 할 때쯤,


"관둬야 할 것 같아.. 진짜, 나 출근할 걸 생각하니까 너무 끔찍해.. 그냥 나 출근하지 말라고 이미 판은 깔려 있는 곳에 내가 제 발로 들어갈 이유를 못 느끼겠어.."







그렇게 나는 다음 날이 되어서까지 진지하게 생각했다.




마음속에 늘 품고 있던 사직서를, 겁에 질려서, 책임감에 사무쳐 내밀지 못하던 그것을 내밀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

.

...아니, 결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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