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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21. 2022

간호사 인생 첫 6개월은, 목표대로 일단 버텼습니다.

독립 5개월차, 사직을 결심하다.-1




독립한 지 5개월이 지났다. 입사한지는 6개월째이다.




6개월은 버티자. 어떻게든 버티자




입사 전부터 다짐했던 것. 관두더라도 최소 6개월은 다녀보기.




6개월이라는 임상경력은 사실 어디 내놓을 수 없는 정도로 짧을 수도 있지만, 어느정도 병원 일에 대한 틀이 잡히거나 나란 사람이 대한민국 간호사로서 어떻게 꿈꾸며 일할 수 있을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기간으로 생각 되었다.

더불어 '내가 이 병원에서 어떻게 성장해나갈 지, 나라는 존재가 이 병원에서 어떤 존재인지 어느정도 그려지는 기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6개월보다 짧은 기간은, 뭣도 알지 못할 그런 기간인데.

파트타임잡(*part time job,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직장에 들어와 맛보기 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보고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즉, 책임감없이 내 직장을 관두는 것일 수도 있다 싶었다.


대신 6개월'이나' 버텨봤는데, 영 아니더라고 떳떳하게 말하기 위해선 '제대로' 간호사로 일해보고 결정하는게 맞다 생각했다.

업무강도가 아주 약해서 공부할 필요도 없는 병원이나 부서거나, 환자 치료가 전혀 되지 않는 곳이라면 괜스레 일하다 '나, 간호사라는 직업 너무 잘 맞는데.. 직장이 아쉬워'라며 아쉬움에 사무쳐 또 다시 취업준비를 해야하니까.


그래서 3차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중환자실로 발령이 났다. 그렇게 6개월을 채워보면, 적어도 떳떳할 것 같았다.


6개월이 지나서도 이 병원에서의 내 미래가 너무 암담하거나 간호사는 내가 원한 직종이 아니라고 판단이 되거든

'그땐 그냥 관두자. 갈 곳도, 하고 싶은 것도 내겐 너무 많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간호사로 일하다보면 수많은 가스라이팅과 태움속에서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 발버둥 쳐야하는데,

'나라는 고급인력을 이렇게 밖에 취급해주지 않는다면,' 혹은 '내게서 어떻게든 다 탈탈 털어 빼먹으려고 하는 곳이라면,' 관두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6개월이면 어느정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내가 신규 간호사로서 자존감을 지켜나가는 악바리 근성이었다.



나의 마지노선 6개월 차에 접어 들었을 때엔 '한 달만 더 죽어라고 버텨. 그리고 관둘지 말지 정해보자.'의 마음으로 일했다. 나름 책임감있게 살아오려고 노력했던 사람인지라 입사한김에 최대한 버티고 싶기도 했다.

하여, 잘해보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도장깨기하듯 좀 만 버티고 그때도 거지같으면 그냥 쿨하게 관두는 거라며,

내가 병원을 간보는 느낌으로 일했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딱. '마음이 써지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의 최대치'만 했다. 해서, 선배선생님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다.


"쟨 하면 잘 할 것 같은데.."라는 게 여태껏 들어온 나를 향한 평가였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더 노력해야겠다!'라는 마음은 사실, 잘 모르겠다. 최대치. 최대치만 해내도 벅차니까-. 근데, 다른 윗 선생님들에 비해 나는 '노력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상처가 난무하는 이 직장에서 과하게 애정과 노력을 쏟다가 '난 이만큼이나 했는데..'라며 상처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게 내 3차병원 중환자실에서의 신규 간호사 6개월간의 마인드.





그래서 6개월이 지나 어떻게 했느냐고?








나는 머리와 마음 어딘가에 스크래치가 나버리면, 급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업무속도가 0.3배속 쯤이 되고 해야될 것을 계속 머릿 속이든 메모장이든 새겨넣을 수가 없을정도로 지리멸렬했다


즉, 잘 해낼 것도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 나도 안다.



이젠 지식적으로 딸려서 혼나는 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우리 동기들 중에 항상 운이 좋지 않게 내가 혼났다. 동기중에 내가 가장 늦게 입사했지만, 우리 모두가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 받는 1등은 항상 나였다. 얌체가 되고 싶지 않아서 동기들 모두에게 '오늘 어떤 선생님이 내게 이걸 물어봤으니 너네도 알아놓으면 좋을 것 같다.'라고 혼남 포인트, 아니. 우리 부서에서 알아야할 지식에 대해 공유했다.


6개월차까지도 나는 '인계'로 애를 먹었다.

지리멸렬 그 자체였다. 나도 내 자신이 내 환자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흔한 관상동맥조영술 환자에 대한 리뷰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혼이 났다.





내 환자, 중환자 4명을 다음 듀티 선생님에게 인계해야했다. 내가 일하는 중환자실은 총 환자 수가 적은 병동이어서 큰 벽이나 파티션으로 구분된 것 없이 공간 하나에 모든 환자가 존재했다.


A룸, B룸이라 존재하고 웬만하면 막내가 A룸, 중간 사번이 B룸을 보긴 했지만 어쩌다 오늘처럼,

"너 누구 누구 누구 누구 이렇게 넷 봐."

라는 말을 들으면 룸의 구분이 없이 랜덤하게 환자를 4명 지정받아 봤다.


그래서 "오늘 A룸 네 명 봐."라는 말은 나에게, 아니 우리 동기에겐 사실 빛같은 말이었다.

속으론 '아싸-!'를 외치게 된다.

왜냐면 대체적으로 다음 듀티에서도 A룸은 내 동기가 맡게 될 확률이 크니까-.





6개월 차의 어느 나이트가 바로 그랬다.

그렇게 랜덤하게 환자를 보는 날.


즉, 내가 나이트동안 본 환자 중 한 명을 윗 선생님께 인계드려야했다.

그것도, 내 프리셉터(*preceptor, 독립 전 나를 담당해 가르쳐주는 멘토, 사수)선생님이셨다.




그리고, 사직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 날의 나이트

독립 5개월차, 입사한지 6개월차.



속이 타 들어간다.

늦 겨울이라 아직은 해가 늦게 뜨는 그런, 그런 계절인데.


벌써 해가 뜨고 있다. 곧 다음 듀티 선생님들이 출근할 것이다.


이미 해는 떴고, 데이번 선생님들은 근무를 시작했다.

지나치게 날씨가 좋은, 겨울 주말 아침이다. 애석하기도 하다.


사실 나이트 업무를 어느정도 마무리하다보니, 나이트번이 데이번에게 인계를 해야하는 시간은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보통, 데이번은 오전 7시까지 출근해서 오전 7시30분까지 환자에 대해 파악한다. 전산을 체크하고 전 듀티 간호사에게 인계를 듣는다. 즉, 나이트번은 오전 7시 전까지 업무를 마무리 짓고 7시부터는, 적어도 7시 15분부터는 데이번에게 환자 인계를 주어야한다. 그래야 7시 30분안에 끝난다.



"일 마무리 했니? 인계는 했어?"


그래서, 이미 8시를 향하고 있는 시침때문에, 아니. 기다렸다가 함께 퇴근하는 그, 그 못난 문화때문에 그래서 재촉하시는 거다.


다시 한 번 전산을 본다.

앉아서 전산을 검토하기엔 마음이 좋지 않다. 그냥, 형용할 수 없는 불편한 마음이다.

그래서 괜히 다리를 어정쩡하게 벌려 키를 낮추고 컴퓨터를 들여다 본다.


의미 없는 마우스질.


부리나캐 움직였고, 일했던 하루다.  잘, 모르겠다. 뭘 모르겠냐고? 어영부영 일을 마무리 한 것 같은데..

확신은 없다.

중간년차 선생님의 질문에 '아직 못 한 것이 남아있습니다-.' 라는 대답이 이제 고갈되었다는 것을 깨닳는다.

그냥, 솔직히 말하자면 최대한 시간을 질질 끌고 있는 것에 가깝다.





"서, 선생님 인계드릴까요..?"


나는 쭈뼛대며 B룸 간호사 전산 컴퓨터 앞에 서 계시는 선생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럼 안 주려고 했어요?"


선생님의 반응에 자존감이 바닥치는 기분이 든다. 멘탈이, 멘탈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로 내뱉은 그 짧은 한 마디의 힘은 자신감이 없던 나에겐 너무나도 강력했다.

크나 큰 비수가 되었다.


"아, 아닙니다. B룸 1번 베드(*Bed)에 계시는 김민석님 인계 드리겠습니다.."

왼손 검지손톱으로 엄지손톱 옆 살 점을 야금야금 뜯으며 더듬거리듯, 말했다.



오늘, 하필 내가 인계해야 하는 오늘.

내 프리셉터 선생님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아 보인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데이 번이라서. 너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잠을 설친 채로 출근해 일하는 거라서.

깜깜한 새벽에 출근 길을 나섰는데, 그게 문득 짜증이 나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대다수의 간호사들이 데이 때 이유없이 화가나있고 예민해있는 그런이유.

아침마다 부모님에게 짜증을 내는 그런 이유인걸까-



"뭐라고요? 그게 약이 뭔데. 그런식으로 인계를 하지?"

아-. 그래. 자신없는 이유는 오늘 듀티동안 해야 하는 일들을 다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의학용어든, 약이든, 시술이든, 병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든 간에 그런걸 100프로 알 지 못했기 때문이였어.


"대답 못해요?"

"... 죄송합니다."

"..." 순간의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은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내 정신은 이미, 혼이 나간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하겠습니다.."




인계같지도 않은 인계를 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어떤 환자를 보게 될 지도 모르셨을 텐데.. 그 짧은 시간 내에 내가 제대로 모른 것과 제대로 못 한것을 파악하실까. 만감이 교차했다.


함께 근무한 선생님은 "인계 다했어?" 라고 물으셨다.

시간은 8시 15분이 지났다. 대답을 쭈뼛쭈뼛하자, "가자."라고 하신다.



'다시 준비해서 인계하세요.'


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얼떨결에 함께 인사를 한다. 하면 안될 것 같은 데. 인사를 했다.

.

.

.

느린 동작으로 환복했다.

긴가민가- 하면서도, 도통 죄책감과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탈의실 문을 열고 나왔다. 탈의실 문 바로 앞에는, 중환자실에서 복도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함께 일한 선생님께서 문을 여셨다. 그리고 곧바로 내 프리셉터 선생닝미 눈앞에 위치하고 계셨다.



"...너, 지금 장난해?" 선생님의 눈은 사뭇,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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