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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Sep 16. 2022

간호사가 사직 면담 시 오가는 대화는,

보통 상처가 오간다. / 독립 5개월 차, 사직을 결심하다.-4



"어-너 왜 아직도 안 갔어?"

부서장님은 꽤나 내가 할 말을 눈치 채주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봐주셨다. 그래. 물어봐'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하다.



부서장님의 얼굴은 찌푸려져 있었다.

"아-. 너, 나한테 할 말 있구나. ?"

"네..." 나는 쭈뼛대며 대답했다. 그리고 부서장님과 함께 부서장님의 방으로 향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뭔데?"

"... 부서장님, 저 사직을 하고 싶어서요..."

"설마 너 엊그제 있었던 일 때문이야? 나도 듣긴 했는데.. 서로 오해가 있었던 거 아닌가? 물론 네 프리셉터가 한 행동들은 너에게 상처가 되겠지만, 너도 잘못하긴 했잖아."

"네. 제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저는 그만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도 따로 있고.. 간호사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부서장님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고 싶은 게 뭔데?"

.

.

나는 '남을 위해 도우며 살고 싶다.'라고 했다. 어렸을 적부터, 아니. 고등학생 때 간호학과로의 진학을 꿈꾸게 된 것은 순전히. 취약계층을 보며 그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다 현실적으로, 그리고 이상적으로 멋있게 그들을 돕는 방법은 의료진이 되는 것이었다.



성적이 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의사'라는 직업에는 사실 관심이 하나도 가지 않았다. 당시 '간호사'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지 못했던 고등학생의 나는 그저 '의사'라면 의학 드라마에서나 보던, 수술실 앞에서 엉-엉 우는 보호자들의 멱살에 잡힌 채로 고개를 푹 숙인 그런 이미지가 강하기도 했다.


즉, '의사'는 내게 너무나도 부담스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컸기도 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꿈과 미래는 의사보단 간호사가 훨씬 가깝다고 느꼈다. '헌신'하는 마음을 중시하는 직업이니까-

.

.

.

"저는 비영리 단체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습니다."

"... 뭐, 국제협력단체, 이런 곳 말하는 거야? 너.. 남들한테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 그러는 거구나?"

어떻게 아셨을까-. 내 마음을 꿰뚫어 보심에 나는 기뻐해야 하는 걸까.



"내가 아는 선생님도 한참을 잘 일하다가 그쪽으로 빠지셨는데..."  부서장님은 이런저런 말들로 나를 구슬려보려고 했다. 보통, '네가 일하고 자하는 곳들은 네가 생각한 것과 거리가 멀다. 내 주변에도 너 같은 마음으로 나가서 막상 일해보고는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몇 있다. 가서 후회와 실망이 클 것이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 네.. 하지만, 후회를 하더라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보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었고 더 나이 들어서 해본다면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어지고 미련만 오히려 남을 것 같고.. 그때 가서 후회를 하든 안 하든 다시 임상으로 돌아오더라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부서장님은 내가 쭈뼛대지만, 어두워진 그 회색빛의 낯빛으로 꽤나 뚜렷하게 자기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부서장님의 얼굴 근육은 점점 더 찌푸려져만 갔다.



"언제까지 일하고 싶은 데?"



이번 달까지만 원한다-. 최대한 빨리 퇴사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을 듣고 부서장님의 목소리는 점점 힘 있게 커지고 있었다.

"근데-. 내가 너희 처음 들어왔을 때 분명히 얘기했을 텐데.

 사직하고 싶거든 3개월 전에는 이야기하라고."






내 두 눈은 동그랗게 떠졌지만, 무의식이 찌푸려놓은 내 미간이 쉽사리 펴지지 않는 게 느껴졌다. 왼쪽 눈 살이 파르르르 떨렸다. 마그네슘 부족인 걸 까?



"그동안 생각 좀 더 해봐. 너도."

"아닙니다. 전 확고합니다."

내내 주눅이 들어 생각이 많은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나도, 이 말만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부서장님의 미간이 1초간 움찔댔다.


부서장님은 서류를 뒤적대다 무언가를 보더니 온갖 찌푸린 얼굴로 내게 말했다.

"... 너도 거짓말 친 거잖아, 결국?"

내가 억울함과 당황스러움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부서장님을 쳐다봤다.




"이력서에는 이 병원에서 오래 일하겠다고 온갖 어필하면서 들어왔을 거 아냐. 아니야?"




맞는 소리. 하지만 내가 쓴 말들 때문에 다시 일을 열심히 해보겠다고 마음을 바꾸고 사직을 번복하기엔, 이 순간에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 예상도 못했던 소리.



오히려, 조금은 정이 더 떨어져 가게 만든 말일 수도.




"... 죄송합니다."

하지만 내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죄송합니다.'뿐이었다.

내 이력서에 쓴 말들을 지켜내지 못함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은 '죄송함을 표현하는 일'이니까.

고개를 다시 푹 숙이며 주눅이 든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일단 팀장님한테 너 사직처리 최대한 빨리 해달라고 말해볼테까 조금만 기다려."

"감사합니다. 부서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

.

.


내 마음과 머리가 내린 결정에 대해 내 나름 똑 부러지게 이야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완전히 후련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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